IOC, 올림픽서 욱일기 금지해야… 韓日 관계 악화엔 미국도 책임 있어

조선일보
입력 2019.11.11 03:00

'알렉시스 더든'
日 총리 역사관 비판 성명 주도, 2015 만해평화대상 받은 지한파
"美, 동북아 안보·경제에만 관심… 韓·日 과거사 문제는 방관만"

"2028년 열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경기장에서 인종차별과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인 '남부 연합기'를 흔든다면, 과연 전 세계가 납득할까요."

지난 8일 서울 코리아나호텔 회의실. 국제 학술회의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에 참석한 알렉시스 더든(50) 미 코네티컷대 교수가 본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의 욱일기(旭日旗)를 금지해야 한다'는 칼럼을 실어 화제를 모았다. '남부 연합기'는 19세기 미 남북전쟁 때 노예제도에 찬성했던 남부 지역의 깃발이다. 지난 2015년 흑인 교회 총기 난사 사건 당시 백인 인종주의자인 범인이 홈페이지에 남부 연합기 사진을 게재한 이후 미국 내에서 퇴출 움직임이 거세다.

알렉시스 더든 미 코네티컷대 교수는 “일본 극우 세력에게 욱일기를 흔드는 행위는 침략의 역사를 지워버리기 위한 집단적 노력을 의미한다”고 했다.
알렉시스 더든 미 코네티컷대 교수는 “일본 극우 세력에게 욱일기를 흔드는 행위는 침략의 역사를 지워버리기 위한 집단적 노력을 의미한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더든은 "미국의 인종주의자와 일본 극우 세력은 노예제나 위안부 강제 동원 같은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거나 왜곡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이들은 '역사 부정론자들(denialists)'"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에서 2차 대전 당시 일제의 침략 전쟁을 상징했던 욱일기를 흔드는 건, 한국뿐 아니라 다른 피해국에도 상처를 주는 정치적 행위"라며 "중국·싱가포르·필리핀·미얀마 등으로 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이 퍼지기 전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욱일기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든은 2015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역사 인식을 비판하는 세계 역사학자들의 공동 성명을 주도했다. 그해 만해평화대상을 받은 지한파(知韓派) 학자.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등 당시 성명에 참가한 학자들은 역사 인식의 공통적 토대를 확인하기 위해 이듬해부터 매년 국제 학술회의를 열고 있다. 올해 네 번째 회의가 한국에서 열린 것이다. 더든도 지난 8~9일 열린 올해 회의에서 사회·발표·토론자 '1인 3역'을 맡았다. 그는 1986년 일본에 체류하면서 일본어를 배웠다. 1989년에는 처음 방한해서 부산·경주·서울 등을 여행했고 1994년 연세어학당에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도 미 대학에서 강의 시간에 만해 한용운의 시를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그는 올해 회의에서 '동아시아 동맹국 간의 갈등? 미국의 더러운 비밀(America's dirty secret)'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이면에는 미국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자기 비판적 주장이다. 미국이 동북아 안보와 경제에서는 한·일 양국을 최우선 동맹국으로 인식하면서도, 정작 과거사 문제에서는 '당사국들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며 뒷짐 지고 방관하는 자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2015년 만해 평화대상 수상 당시 아들 줄리언과 백담사를 둘러본 알렉시스 더든 교수
2015년 만해 평화대상 수상 당시 아들 줄리언과 백담사를 둘러본 알렉시스 더든 교수. /성형주 기자
또 더든은 전후(戰後)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일본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편애 현상(favoritism)'이 존재했다고도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일본 고위 관료와 기업인 같은 강자의 말에만 귀 기울인다면, 강제 동원 피해자 같은 약자의 목소리는 어떻게 듣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더든은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 이후 미국이 자국 내에서는 '피해자 우선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국제 문제에서는 현실주의로 치닫는 경향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냉정한 국제관계에서 지나치게 이상적 접근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국제법이야말로 국가 간 첨예한 갈등을 조율하기 위한 이상주의의 산물이다. 국제 인권 문제에서는 최근 20년간 그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과거사 문제에 눈감는 일본이야말로 그 예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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