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김장으로 나누는 情

조선일보
  • 임경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
입력 2019.11.11 03:01

임경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
임경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지난 8일은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이었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부모님은 김장을 준비하신다고 연락을 하셨다. 부모님이 아직 김장을 하실 만큼 건강하셔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고작 얇은 용돈 봉투를 드리면서 부모님의 김장 김치를 가져다 먹는 것이 늘 죄송하기만 하다.

많은 가정에서 이뤄지는 비슷한 풍경일 것이다. 가정을 넘어 많은 단체가 해마다 대규모 김장 행사를 한다. 많게는 수백 명이 모여 김치를 담그고, 담근 김치를 필요한 이웃들과 나눈다. 우리 사회만의 독특한 겨울맞이 모습이다.

내 어린 시절과 비교해도 김장 형태가 많이 변했다. 예전엔 어머니와 이웃 아주머니, 여성 친인척들 행사였지만, 이제는 남성들도 장보기부터 버무리기까지 함께하는 집이 많다. 양은 대폭 줄었다. 하루에 몇 백 포기씩 했는데 이제는 한 집에 많아야 10여 포기다. 가장 힘이 드는 '절이기'는 절인 배추를 사서 쓰는 것으로 대체한다. 아예 김장을 하지 않고 사 먹는 가정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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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전히 우리에게 김치와 김장은 먹거리 이상의 무엇이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선 초반에 동백에게 야박하게 굴던 동네 언니들이 김장하면 김치는 꼭 나눠줬다는 내용이 나온다. 겉으론 무뚝뚝해도, 함께 김치를 나누는 사이라면 끈끈한 정(情)으로 묶여 있다는 설정이다.

김장은 우리나라 국가무형문화재이면서 2013년 등재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처음 등재를 준비할 때만 해도 '김치 담그기' 또는 '김치 문화'라는 명칭을 검토했었다. 하지만 세계의 많은 절임, 발효 음식 중 김치가 갖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서로 나눠 먹는 것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의 명칭이 '김장, 한국의 김치 만들기와 나누기'가 된 것이다.

올겨울은 맛있는 김장 김치를 가족 간, 이웃 간 나누는 따뜻한 겨울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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