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라이프] 뉴요커 '무단횡단'… 無人 자동차 시대에 사라질 '1순위'

입력 2019.11.11 03:11

오윤희 뉴욕 특파원
오윤희 뉴욕 특파원
뉴욕에서 뉴요커와 관광객을 구별하는 몇 가지 방법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무단횡단(jaywalking)이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뀔 때까지 길을 건너지 않고 교통 법규를 지키는 사람은 관광객, 신호등 색깔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차가 오는지만 확인한 뒤 냉큼 길을 건너는 사람은 뉴요커란 것이다. 우스개 섞인 말이긴 하지만, 실제로 맨해튼 일대에선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사람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큼 '신호등 보지 않고 길 건너기'가 일반화돼 있다.〈사진

뉴욕에서 무단횡단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은 맨해튼 도로의 독특한 구조와 관련 있다. 블록 단위로 설계된 맨해튼 도로는 대부분 일방통행이다. 맨해튼 도시 설계자들은 자동차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6차선 거리도 일방통행으로 만들었다. 이 때문에 성격이 급하기로 유명한 뉴요커들은 차가 오는 방향만 확인하고선 비교적 안전하게 무단횡단을 할 수 있다.

뉴욕 행정 당국자들이 무단횡단을 수수방관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998년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 시장은 무단횡단 단속령을 내렸다가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혔다. 게다가 이미 뉴욕에선 '상식'이 된 무단횡단을 일일이 단속하기엔 경찰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단속령은 얼마 못 가 흐지부지됐다. 뉴요커 조앤(26)은 "무단횡단이 특별히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사람 중 파란불로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뉴욕의 횡단보도 사진

그런데 최근 뉴요커의 무단횡단에 대해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제동을 건 것은 무인 자동차다. 이달 초 뉴욕타임스(NYT)는 "무인 자동차가 본격 도래한 시대에 과연 뉴요커의 무단횡단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미 자동차공학회(SAE)는 무인 자동차의 자율 운행 기술 수준을 0~5까지 6가지 단계로 분류한다. 이 기준으로 보면 최상인 '5단계'는 복잡한 도로에서 자유자재로 운전할 수 있고, 한 단계 아래인 '4단계'는 다양한 도로 조건에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다. NYT에 따르면 5단계가 되기까지는 10년 이상이 소요될 전망이고, 4단계 수준은 5년 이내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인 자동차는 파란불에 멈추고, 빨간불에는 운행하는 교과서적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무인 자동차 운행 기술이 향상된다고 해도 무단횡단자와 충돌을 피할 수는 없다. 도로 교통 무법천지인 맨해튼 같은 상황은 당연히 무인 자동차 주행 프로그램에 입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율 주행 스타트업 '죽스(ZOOX)'의 최고 안전 담당 관리 요원인 마크 로즈킨드는 NYT에 "무인 자동차의 기술적 문제점은 금세 해결될 것이다. 가장 큰 과제는 사회가 기술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이라면서 "무인 자동차가 본격화될 시대에 맞춰 적절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자율 주행 스타트업 '옵티머스 라이드'의 공동 창업자 라미로 알메이다는 뉴욕 뉴스 채널 고다미스트에 "무인 자동차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책임감 있는 사회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고 했다. 무인 자동차가 등장할 경우를 대비해 교통신호를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뉴욕의 특징인 무단횡단이 정말로 자취를 감출지도 모른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기술이다. 과학이 지배하는 21세기를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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