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입력 2019.11.11 03:14

박종세 부국장 겸 여론독자부장
박종세 부국장 겸 여론독자부장

문재인 정부가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나온 비정규직 통계는 현 정부 일자리 정책의 실패를 알리는 또 하나의 '스모킹 건'이다. 전년 대비 비정규직이 87만명 불어난 통계는 현 정부가 차마 보고 싶지 않았던 지표일 것이다. 30여 쪽짜리 보도자료에 10여 차례에 걸쳐 통계 작성 방법이 달라졌다며 전년도와 비교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하고, 증감률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그래픽을 뺀 모습에서 청와대와 정부의 당혹감이 읽힌다.

비정규직 문제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해결 의지를 강하게 밝힌 현안도 드물다. 문 대통령은 대선 직전인 2017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5번째로 비정규직이 많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의 희생은 끝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2016년(기준으로) 32%가 넘는 비정규직 비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기 위한 장기적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했다.

임기 절반을 달려왔지만 비정규직 비율은 36.4%로 오히려 12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 OECD 기준을 따르더라도 24.4%로 올라, 대통령이 약속했던 OECD 평균(11.7%)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책상물림 소득 주도 성장으로 일자리 숫자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수준으로 사라지자, 급하게 재정을 투입해 노인 일자리로 채워넣다 보니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말았다. "노동의 양과 질이 모두 개선되고 있다"고 아무리 우겨도 마치 짧은 담요처럼 한쪽을 덮으면 어쩔 수 없이 한쪽이 자꾸만 삐져나오는 것이다.

물론 비정규직이라는 노동 형태의 구분이 모호하고, 60세 이상 인구에서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게 반드시 나쁜 것인가 하는 현 정부의 반론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20대 비정규직이 23만8000명 늘어나 60세 이상 다음으로 많이 증가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20대 청년들은 비정규직 전체 비중에서도 18.2%로 30·40대를 제치고 50대 바로 다음으로 올라섰다. 이는 한국경제에서 지금껏 좀처럼 목격하지 못했던 현상이다.

연령별 인구수를 따져보면 세대 간 불평등이 더욱 분명해진다. 지난 2010년엔 20대 인구가 50대보다 2만9000명가량 근소하게 많았지만, 이후 역전돼 지난해엔 50대가 20대보다 무려 151만명가량 더 많다. 그러나 올해 비정규직 통계를 보면 20대에서 늘어난 숫자가 50대보다도 10만명이나 많다. 은퇴를 향해 가는 50대의 비정규직 비중은 줄어들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0대의 비중은 오히려 높아졌다. 정년은 60세로 늘리면서 임금 조정 등 아무런 양보도 하지 않은 무책임한 정책이 청년들의 괜찮은 일자리 진입을 막아, 세대별 고통 분담의 비대칭 현상이 본격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숫자가 믿기지 않는다면 현장을 돌아보라. 경영난을 겪는 한국GM에선 해직됐던 정규직 300명을 복직시키면서, 일하고 있던 비정규직 650명을 계약 해지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진행되고 있는 공기업 등에선 노조 친인척들이 반칙 채용되고 있고, 이런 식으로 늘어난 인건비 부담으로 신규 채용의 문은 더 좁아졌다. 문 대통령이 꿈꿨던 비정규직 해결이 최소한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는 강성 노조가 보호하는 정규직 노동자의 기득권을 일부라도 허물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다. 정치권·정부·노동계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카르텔이 지속되는 한 20대는 세대 간 카스트로 고착돼가는 일자리 피라미드 맨 밑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지금 이 땅에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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