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된 자사고·외고 한번에 폐지… '강남 8학군'에 기름부은 꼴

입력 2019.11.08 03:02

[자사고 폐지]

조국 사태후 '공정성·평등' 빌미로 군사작전하듯 정책 밀어붙여
강남·목동, 부산 해운대, 대구 수성 등 특정지역 쏠림현상 불보듯
전문가 "고입 불확실성만 키워… 역대 최고인 사교육비 더 뛸 것"

교육부가 7일 발표한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의 일반고 일괄 전환과 전국 단위 모집 일반고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국회 시정 연설에서 "고교 서열화 해소를 위한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발언한 뒤 불과 16일 만에 결정된 것이다. 고교 교육과 대입에 역대급 파장을 몰고 올 개편 작업인데 마치 군사작전을 진행하듯 밀어붙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계에서는 "국민투표를 해야 할 정도의 사안인데, 초중등교육법의 시행령 3군데를 삭제하는 것으로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일 수 있느냐"는 말이 나온다.

강남 8학군 등 특정 지역 학군에 쏠림 현상이 벌어지고, 가뜩이나 사상 최대로 치솟은 사교육비 부담 증가 등 갖가지 부작용이 예상된다고 교육계는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자사고·외고 등은 "일반고 일괄 전환이 헌법의 '능력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 초중등교육법의 '자유로운 학교 운영·교육과정 보장' 등을 정면으로 위반한다"며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을 예고하고 있어 교육정책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강남·목동·해운대 '학군 서열화' 가속

전문가들은 정부가 다급하게 밀어붙이는 일반고 일괄 전환이 여러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내다봤다. 무엇보다 '고교 유형별 격차'가 '지역별 격차 확대'로 옮겨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사라지고 지역의 명문으로 꼽혀온 고교가 전국 단위 모집을 못 하면, 서울은 기존 '강남 8학군'과 목동 등으로, 다른 지역은 대구 수성이나 부산 해운대 등 이른바 교육 특구 중심으로 '학군 서열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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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자사고 교장·학부모들 “우리가 무슨 죄인가” -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와 서울자사고학부모연합회가 7일 오후 서울 중구 이화여고에서 교육부의 자사고 일괄 폐지 정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수월성 교육과 건학 이념에 충실한 교육을 하는 자사고를 말살시키려 한다”며 “정해진 교육의 틀 안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인 자사고에 각종 죄명을 뒤집어씌우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김지호 기자
자사고·외고 등이 사라지면 '강남 8학군'이 부활한다는 우려에 대해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최근 통계를 봤을 때 고교 체계 개편이 강남 부동산에 영향을 미친다는 자료가 실제화한 경우가 없다"면서 "심리적 우려가 반영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입시업계 관계자는 "이번 조치가 적용되는 초등학교 4학년 이하 학부모들은 집 주변에 명문 일반고가 없으면 좋은 학군으로 가려고 일찌감치 이사하려는 수요가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하향 평준화와 지역별 양극화

교육부는 내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일반고 역량 강화를 위해 예산 2조2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자사고·외고 등의 2025년 일반고 일괄 전환에 앞서 일반고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교육계에서는 예산을 투입하기로 한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 교원 전문성 제고 등으로는 일반고의 교육 역량을 단기간에 높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국내 고교 유형 정리 표

국립대의 한 교수는 "이번에 일반고 역량 강화로 내놓은 방안들은 지난 정부와 이번 정부 초에 이미 발표한 재탕 정책이고 새로운 것이 없다"며 "예산만 쓰고 성과는 못 내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수월성 교육을 추구하는 역량 있는 고교가 사라지는 부작용으로 학력 하향 평준화를 우려한다. 일반고 가운데 학군이 좋은 일부 명문고만 학력을 유지하고, 대다수는 하향 평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차기 정부 번복 등 불확실성 커져

일반고 일괄 전환 시점이 다음 대선(2022년) 이후여서 차기 정부의 번복 가능성이 있어 교육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도 문제다. 이런 점을 알면서도 정부가 밀어붙이는 것은 당장 내년 총선용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적 다툼 소지가 있는데도 실제 시행 시기를 다음 정부 임기인 2025년으로 미뤄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한 교육계 인사는 "이번 정부에서 책임질 일 아니라는 '아니면 말고'식 무책임한 행태"라며 "이 때문에 학생·학부모는 물론 사학(私學)들도 엄청난 혼란과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성호 중앙대 교수는 "다양한 공교육에 대한 수요를 틀어막으면 학생과 학부모는 결국 사교육에 기댈 수밖에 없다"며 "역대 최고인 사교육비 규모가 앞으로 더 뛰어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세계 각국이 사학을 통해 다양하고 우수한 인재 양성에 매진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발전적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현 시점에 우리 정부는 서열화를 해소하겠다는 명분으로 획일적 평준화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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