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지붕에 스키장, 바다 위에 기숙사… 이것이 '쾌락적 지속가능성'

입력 2019.10.30 03:01

[덴마크 도시재생]
발전소 위 스키장 '아마게르 바케', 컨테이너 水上 기숙사 '어반 리거'
빈민가를 주민 쉼터로 '수퍼킬렌', 세계적 건축사무소 BIG 등 설계

"환경만을 고려한 건축물 아닌 시민이 즐길 수 있는 공간 추구"

발전소 지붕 위에서 사람들이 스키를 타고 질주한다. 새하얀 눈도, 오싹한 추위도 없다. 인공 눈을 뿌리지 않아도 사계절 스키를 탈 수 있는 곳. 덴마크 코펜하겐 도심 한복판에서 세계 최초로 '발전소 위 스키장'이 문을 열었다.

발전소, 스키 슬로프를 지붕에 얹다

지난 4일 '아마게르 바케' 발전소 지붕에 스키장이 개장했다. 국토 대부분이 평지인 덴마크에 생긴 첫 스키장이다. 정상 높이 85m, 슬로프 길이 450m. 거대한 미끄럼틀을 닮은 언덕 모양 때문에 일명 코펜힐(Copenhill·코펜하겐의 언덕)로 불린다. 바닥엔 눈 대신 초록색 플라스틱 합성 물질을 깔았다. 발전소 위를 스키장으로 꾸며 혐오 시설을 여가 시설로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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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발전소 지붕에 만든 스키장에서 한 시민이 스키를 타고 내려오고 있다. ②'수퍼킬렌'에 만든 문어 모양 조형물. ③코펜하겐 바다 위에 컨테이너로 만든 학생 기숙사 '어반 리거'. ④덴마크 도시재생을 주도한 세계적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 /Rasmus Hjortshoj·Torben Eskerod·BIG
시작은 이랬다. 지난 2011년 아마게르자원센터(ARC)는 흉물스러워진 기존의 발전소를 대신할 새 건물 디자인을 공모했다. 조건은 한 가지. "발전소 옥상의 최소 20~30%를 대중에게 개방한다." 덴마크의 세계적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의 회사인 BIG의 설계안이 채택됐다. 발전소 여러 동을 키 순서로 이어붙이고 그 위에 스키 슬로프를 얹는다는 발상이 심사위원을 사로잡았다. BIG의 파트너 건축가 카이-우베 버그만(50)씨는 "산이 없는 덴마크에 우리가 직접 산을 만든다는 발상, 단지 환경만을 고려한 건축물이 아니라 시민이 즐기는 공간으로 꾸민다는 게 통했다"고 했다.

지난 2017년 발전소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쓰레기를 연간 44만t까지 태워 에너지를 만드는 친환경 발전소다. 쓰레기를 태울 때 나는 열로 고압증기를 만들어 코펜하겐의 가정집과 사업장에 전기와 난방을 공급한다. 최첨단 정화 시설을 갖춰 해로운 공기를 배출하지 않는다. 코펜하겐시(市)가 이런 시설을 들인 건 2025년까지 세계 최초로 '탄소 제로 도시'가 되겠다는 목표 때문. 기후 변화의 주범으로 알려진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다시 흡수해 실질적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게 목표다.

"덴마크 도시재생의 화두는 '쾌락적 지속 가능성(hedonistic sustainability)'입니다. 친환경이라고 하면 덜 쓰고 차가운 물로 샤워하면서 인내하는 걸 생각하죠? 우리는 즐기면서 삶의 질을 향상하고자 합니다." 버그만씨는 "옥상에는 스키장뿐 아니라 달리기 트랙, 등산로, 숲도 조성했고 크로스핏, 암벽 등반 등 다양한 레저를 즐길 수 있다"며 "코펜힐이 인어공주상 못지않은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바다에 떠 있는 기숙사도 인기

바다 위에 컨테이너로 지은 수상 기숙사 '어반 리거(Urban Rigger)'도 인기다. 땅값이 비싸고 기숙사는 부족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BIG가 진행한 프로젝트. 화물 컨테이너 6개를 별 모양으로 쌓아 물에 띄웠다. BIG 측은 "덴마크 학생 4만여 명이 집이 없어 고생하고 있다. 물에 띄우자는 아이디어를 냈더니 건축 시간도 3분의 1로 단축되고 비용도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원룸이지만 부엌과 화장실, 욕실을 갖췄다.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닷바람이 들이치고, 발코니에선 바다가 펼쳐지는 야경을 즐길 수 있다. BIG 측은 "어반 리거는 건축의 미래"라며 "주택난이 점점 심해지면서 세계적으로 '양서류적 건축'이 화두가 될 거다. 뭍에서도 살고 물에서도 사는 양서류처럼,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수상 도시를 디자인하고 있다"고 했다.

우범지대가 주민들 문화공간으로

코펜하겐의 북쪽 외곽 뇌레브로에 만든 공공예술공원 '수퍼킬렌(Superkilen)'은 덴마크 도시재생을 상징하는 장소. 범죄율 높은 빈민가가 주민들의 쉼터이자 문화공간으로 되살아났다. 3인조 작가 그룹 수퍼플렉스가 이끈 프로젝트로 다양한 배경의 이주민들이 그 과정에 직접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팔레스타인 소녀와 함께 중동 땅에서 가져온 흙을 언덕에 뿌렸고, 자메이카 출신 청년들이 고향에서 가져온 대형 스피커를 공원에 설치했다. 수퍼플렉스의 야코프 펭거(Fenger)는 "우리의 방식은 '극단적인 참여'였다"며 "지역 주민들의 출신 국가 62개국에서 소품 108개를 직접 가져와 설치했더니 지금은 가장 '힙'한 동네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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