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비정규직 '제로'라는 환상

입력 2019.09.30 03:13

최원우 사회정책부 기자
최원우 사회정책부 기자

지난 23일 톨게이트 비정규직 요금수납원에 대한 첫 직무 교육이 열린 경기 화성 한국도로공사 인재개발원. 정문 앞에 '투쟁·단결'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톨게이트 비정규직 요금수납원 노조원 40여명이 일렬로 섰다. 노조원들 손에는 '집단해고 청와대가 책임져라'라는 팻말이 들려 있었다. '도로공사는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길에서 공공의 적이다'라는 대형 현수막도 펼쳤다.

이날 교육에는 도로공사가 법원 판결에 따라 직접 고용하기로 한 요금수납원 420명 중 320명이 참석했다. 공사는 교육 후 고속도로 쉼터 환경미화 등 새로운 일을 맡기겠다고 했다. 점차 요금 받을 일이 줄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조원 40여명은 "공사가 직접 정규직으로 고용해 요금수납 업무를 그대로 맡기지 않으면 교육을 거부하겠다"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교육장에서 모두 들릴 만한 큰 소리로 "일방적인 교육 진행, 도로공사 규탄한다! 투쟁!"이라고 외쳤다.

도로공사의 비정규직 요금수납원 갈등은 6월 말부터 석 달째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이들은 출근길 고속도로를 불법 점거했고, 10m 높이 톨게이트 위에 올라가 고공 농성을 벌였다. 도로공사 본사 건물 일부를 무단 점거하고, 그 안에서 추석 차례를 지내기도 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 임금 차별 등을 받는다면 고쳐야 할 일이다. 그러나 모든 비정규직이 과거와 같은 일을 하면서 갑자기 정규직으로 바뀔 순 없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만 해도 시속 100㎞로 달리는 차의 번호판을 인식해 요금을 매기는 '스마트 톨링' 기술이 나왔다. 무인 자동화로 비용을 크게 줄이고 해외 수출까지 가능한 기술이라며 정부가 2020년까지 도입을 정부 국정과제로 올렸던 사업인데, 현재는 도입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일자리를 뺏지 말라"는 이들의 떼쓰기에 정부가 물러섰기 때문이다. 한 도로공사 관계자는 "회사 방안대로 요금수납원이 자회사에 고용돼도 업무는 그대로면서 정년은 보장되고 연봉도 3700만원으로 30% 정도 오른다"며 "그런데도 노조가 대통령 약속이라며 '본사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 달라'고 더 큰 욕심을 내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인 2017년 5월 인천공항공사에서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화하겠다"고 했다. 이 지시에 따라 정부가 추진하는 정규직화는 노조원들이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다. 자회사 채용도 정규직으로 집계한다. 친노동 정권이라 자부하는 이 정권에서조차 넘지 못할 선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톨게이트 노조원들은 "본사 직고용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이런 혼란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이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비정규직 제로(0)'라는 달콤한 말에 빠져 무작정 본사 직고용을 요구하는 노조가 잘못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직고용을 지시한 대통령 의중을 잘못 이해하고 자회사 정규직도 정규직화라면서 노조를 몰아붙이는 정부가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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