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일기·3만호 홈런볼… 야구유물 6만점 지하서 자고있네

입력 2019.08.28 03:00

[115년 한국 야구의 보물 창고 'KBO 아카이브센터' 가보니]
개인 226명·33개 기관 등 기증
삼미 유니폼·OB 운동화… 야구팬 향수 자극할 물건 수두룩

"기장 야구박물관 건립 지연으로 기증품들 다시 가져가려는 분도"

야구는 '기록(記錄)'이다. 투구 하나에 구종부터 속도, 회전수 등 다양한 숫자가 붙는다. 득점 하나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기록지에 빼곡히 채운다. 홀로 있을 땐 무의미한 것도 하나로 모여 기록이 되고, 기록이 모이면 역사가 된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 지하 1층 KBO(한국야구위원회) 아카이브센터엔 115년 한국 야구의 '보물' 6만여점(중복 물품 포함)이 보관돼 있다. 야구공과 방망이·글러브는 물론 각종 트로피와 야구 관련 서적, 시대를 대표했던 기념품 등은 한국 야구 기록 그 자체다. 모두 '기장-현대차 드림볼파크' 인근 부지에 건립 예정인 야구박물관에 전시하려던 물품들이다. 애초 2016년 완공 목표였던 박물관 건립은 운영비 분담 문제로 제자리걸음만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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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곡동 야구회관 지하 1층 KBO(한국야구위원회) 아카이브센터에는 ①야구공과 방망이, 글러브는 물론 각종 트로피와 서적 등 시대를 대표했던 야구 기념품 6만여 점이 보관돼 있다. ②SK 제이미 로맥이 지난해 6월 작성한 KBO 통산 3만호 홈런볼 ③추억의 팀 삼미 슈퍼스타즈 수건과 유니폼 ④OB베어스의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 기념 맥주 등이 있다. ⑤선동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광주일고 재학 시절 훈련일지엔 반듯한 글씨로 적어놓은 운동 내용과 투구 폼 연구 흔적이 가득하다. /이순흥 기자·고희동 인턴기자
어떤 야구 역사들이 잠자고 있는지 둘러보기 위해 최근 아카이브센터를 찾았다. 이달 해체된 경찰야구단(2005~2019)의 액자와 훈련 구장 홈플레이트·베이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호근 KBO 아카이브센터 위원은 "14년 경찰야구단 역사는 한국 야구사의 중요한 일부다. 해단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가 챙겨왔다"고 말했다. 섭씨 30도가 넘는 바깥 날씨와 달리 실내는 섭씨 20도, 습도 50%였다. 아카이브센터 안쪽 수장고엔 24시간 항온항습기가 설치돼 있다. 물품을 오랜 기간 보존하기 위해 늘 쾌적한 환경을 유지한다.

약 182㎡(약 55평) 공간엔 야구 유물(遺物)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2011년 본격적인 수집 이래 개인 226명, 33개 기관 등이 기증한 물품까지 합해 6만여점이다. 야구공(2490점)과 유니폼(953점), 기타 야구용품(1737점) 등이 종류별로 쌓여 있다. 프로 원년인 1982년 선수 선서문과 그해 프로야구 사상 유일의 4할 타율(0.412)을 기록한 백인천의 방망이도 눈에 띄었다. SK 제이미 로맥이 지난해 6월 작성한 KBO 통산 3만호 홈런볼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야구 팬의 향수를 자극할 물건도 많다. 추억의 팀 삼미 슈퍼스타즈 유니폼부터 'OB베어스' 운동화, 팀 로고가 붙은 열쇠고리, 병따개, 부채, 넥타이핀, 돗자리 등 기념품이 다양하다. 1996년 신인 박재홍(당시 현대)이 30-30 클럽에 가입한 기념으로 제작한 공중전화 카드도 눈길을 끈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묵혀 있다.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의 고교 일기가 대표적. 그가 광주일고 재학 당시 쓴 일기엔 매일 훈련 일지가 담겨 있다. '오전: 조대(조선대) 계단 오르막길 7번, 오후: 운동장 5바퀴, 베이스러닝 30번, 피칭…' 같은 식이다. 선 전 감독은 스스로 '투수 십계명'을 정해 따르기도 했다. 예컨대 '제1구는 스트라이크로 가져가라' '힘은 힘으로 맞서 싸워라. 정신적으로 타자보다 우월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같은 원칙이다.

이순철 SBS 해설위원은 개인으론 가장 많은 물품(약 1000점)을 아카이브센터에 기증했는데, 대부분 현역 시절 받은 팬레터다.

야구박물관 사업은 마땅한 해결책 없이 표류 중이다. 소중한 야구 기록도 당분간 지하에 더 쌓여 있을 수밖에 없다. 기자는 사흘 동안 아카이브센터를 방문했지만, 눈으로 본 건 빙산의 일각이었다. 물품 목록에만 오르고 상자 속에 보관 중인 '보물'이 대부분이었다. 이호근 위원은 "박물관 건립이 지연되면서 기증한 물품을 다시 가져가려는 분도 있다"며 "홍순일 전 KBO 자료수집위원장처럼 전국을 뛰며 물품을 수집한 분, 아끼는 물건을 기꺼이 내놓은 이들의 노력과 열정이 하루빨리 빛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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