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지의 뉴스 저격] 고령사회 진입 당시 국가채무, 독일 19% 스웨덴 28% 한국 36%

조선일보
입력 2019.06.07 03:02

국가채무 비율 적정 수준 논란

지난달 불거진 '국가 채무 비율 40%' 논쟁은 정치권과 학계를 중심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내년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40%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40%라는 숫자에 집착하지 말라"며 확장 재정(돈 풀기)을 주문한 게 발단이었다. 야당은 "재정 건전성의 마지노선인 40%를 지켜야 한다"고 했고, 정부·여당은 "40%를 넘어도 재정 건전성에 문제가 없다"며 맞섰다.

다만, 지난 4일 한국은행이 국민 계정의 기준 연도를 2010년에서 2015년으로 개편하면서 국가 채무 비율에도 변화가 생겼다. 국가 채무 비율을 구할 때 분모에 해당하는 명목 GDP가 불어나 국가 채무 비율이 낮아지게 됐기 때문이다. 당초 지난해 국가 채무 비율은 38.2%였지만, GDP가 1782조원에서 1893조원으로 늘어나면서 35.9%로 2.3%포인트 낮아졌다. 따라서 내년에 국가 채무 비율도 40%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가 채무는 증가 속도와 증가 폭이 중요한데, 정부의 적극적인 돈 풀기 기조와 경제성장률 둔화 상황을 감안하면 현 정부 말에는 40%를 넘을 가능성이 높다고 재정학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국가 채무 급증

재정학자들이 국가 채무 비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가 빠르게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따르면, 2017년 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14% 이상인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의 고령 인구 비율은 2035년 29.5%, 2067년에는 46.5%로 급증한다. 고령 인구 비율이 급격히 늘면 복지 지출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GDP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이 11.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1.5%의 절반 수준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현재 복지제도를 유지만 해도 2060년쯤이면 우리의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율은 GDP의 약 3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유럽 선진국들이 고령사회에 진입할 때는 우리보다 국가 채무 비율이 낮은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 고령사회에 진입한 독일은 국가 채무 비율이 18.6%에 불과했고, 덴마크(20.5%)와 스웨덴(27.9%)도 30%를 넘지 않았다. 향후 불어날 복지 지출을 고려하면 현재 40%를 바라보는 우리 국가 채무 비율을 낮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1994년 고령사회 진입 시 85%였던 일본의 국가 채무 비율은 2017년 현재 233%로 세 배 가까이 뛰었다. 급격한 고령화로 복지 지출이 급증하는데 성장이 뒷받침하지 못하면 국가 채무는 눈덩이처럼 쌓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40% 넘어도 괜찮다?… 공기업 부채도 고려해야

고령사회 진입 당시 각국의 국가 채무 비율 그래프

최근 뚝뚝 떨어지는 경제성장률도 재정 확장을 경계해야 하는 요인이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은 11년 만에 최저치(-0.4%)를 기록했고, 4월 경상수지도 7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정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내외 경제전문기관들은 올해 성장률을 2.5% 미만으로 낮춰 잡고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당분간 저성장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나라 곳간을 허물어 돈 풀기를 밀어붙인다면 국가 채무 비율이 40%를 돌파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반면 정부는 40%를 넘더라도 재정 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국가 채무 비율 적정선에 대해 김상헌 서울대 교수는 "GDP 대비 몇 퍼센트가 적정하다는 기준은 따로 없다"며 "다만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선 보통 60% 수준을 권고한다"고 했다. IMF는 2010년 펴낸 '선진국 및 신흥국의 세입·세출 정책' 보고서에서 선진국은 GDP 대비 60%, 신흥국은 4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할 것을 조언한 바 있다.

'GDP 대비 국가 채무 60%'는 1990년대 유럽연합이 회원국 가입 조건으로 제시한 기준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재정준칙이 따로 없다. 대신 매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할 때 재정 수지와 채무 관리 목표 수치를 제시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9년 처음으로 국가재정운용계획에 '40%를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그 뒤로 기획재정부는 40%를 '암묵적 재정준칙'처럼 지켜왔다.

이렇게 보면 40%를 넘는다 해도 유럽의 재정준칙에는 한참 못 미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비율에는 공공기관과 공기업 부채가 빠져 있다. 2017년도 기준 국가 채무에 비영리 공공기관과 비금융 공기업 부채까지 포함한 '공공 부문 부채' 비율은 60.4%로 이미 유럽의 재정준칙 기준을 넘어섰다. GDP 대비 공기업 부채 비율만 보면 우리나라는 22%로 일본(17%)이나 멕시코(10.0%), 호주(8%) 등에 비해 높다. 공공 부문 부채 비율도 달라진 국민 계정을 적용하면 56.9%로 낮아지지만 여전히 60%에 육박하며, 공기업 부채 비율(20.6%)도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는 "선진국은 일찍이 민영화를 진행해 국가가 공기업 부채를 책임지지 않지만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며 "공기업 부채도 문제가 생기면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만큼 재정 건전성을 평가할 때 국가 채무와 함께 봐야 한다"고 했다.

미국·일본 100% 넘지만, 기축통화국인 선진국과 단순 비교 어려워

선진국들은 대부분 60%를 훌쩍 넘는다. 일본은 220%가 넘고, 프랑스와 미국도 100%를 초과한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돈을 찍어 재정에 활용할 수 있는 기축통화국과 우리나라의 국가 채무 비율을 단순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재정 건전성을 철저히 관리해야 국제 신용도를 유지할 수 있다. 국가 채무가 급격히 늘어나면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이나 유럽은 국가 채무가 100%를 넘어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를 쓰기 때문에 유사시에 달러를 조달하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위기가 닥치면 당장 달러를 빌려오기가 어렵다. 1997년 외환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이런 일이 반복됐다.

[국제기구·학계 견해는] 국가채무 임계치는 GDP 60~90%

국제기구나 학계에선 경제성장을 제약하는 국가 채무 규모의 임계치를 대체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60~90% 정도로 보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11년 중앙은행과 감독기구, 학계 전문가들의 설문 조사 결과를 토대로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의 임계치를 90%로 제시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스티븐 체케티 등은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8개 국가의 자금순환표 통계를 분석한 결과 GDP 대비 85%가 국가 채무 임계치라고 봤다.

메멧 캐너 등이 작성한 2010년 세계은행 보고서는 1980~2008년까지 79국의 데이터를 분석해 적정 국가 채무 비율을 77.1%로 추정했다. 캐너 교수 등은 국가 채무 비율이 상한선을 넘어서 1%포인트씩 상승할 때마다 실질 경제성장률은 0.02%포인트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개발도상국의 경우엔 64%를 적정 국가 채무 비율로 제시했다.

미 하버드대 라인하트와 로고프 교수도 2010년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90%를 넘으면 경제성장률이 크게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946~2009년 OECD 20개 국가의 성장률과 국가 채무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가 채무 비율이 90% 이하인 경우 GDP 성장률은 3~4%로 안정적이지만, 90%를 초과하면 -0.1%로 급격히 하락했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올해 내놓은 장기 재정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2030년 50%를 넘어선 뒤 2040년 65.6%, 2050년에는 85.6%에 달할 전망이다. 20년 뒤에는 개발도상국 기준, 30년 뒤에는 선진국 기준 임계치에 다다른다는 것이다. 여기에 공기업 부채까지 포함할 경우 임계치에 도달하는 시점은 훨씬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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