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 스토리] 만년 2위 ‘펩시’ 1위 만든 ‘인도 여성 CEO’ 인드라 누이, 사임

입력 2018.08.07 16:06

‘2017년 포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지도자 2위’, ‘2012년 포브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어머니 3위’, ‘2007년 포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경영인 1위’. 모두 ‘펩시콜라’로 유명한 음료·식품회사 펩시코의 최고경영자(CEO)이자 회장인 인드라 누이(62)의 수식어다.

누이가 오는 10월 3일자로 24년간 몸담았던 펩시코를 떠난다. 86세 노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펩시코는 6일(현지 시각) 성명을 내고 누이가 CEO직에서 물러나고, 이사회 회장직은 내년 초까지 유지한다고 밝혔다. 누이의 CEO 퇴진 소식이 알려지자 CNN 머니는 “포춘 500대 기업을 이끄는 CEO 가운데 유색인종 출신의 여성 CEO가 3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누이는 인도계 여성이다.

 인드라 누이(62)가 2018년 10월 3일자로 24년간 몸담았던 펩시코를 떠난다. /마켓워치
인드라 누이(62)가 2018년 10월 3일자로 24년간 몸담았던 펩시코를 떠난다. /마켓워치
“위기에 직면한 펩시코를 구했다”는 평을 받는 누이는 12년간 펩시코 CEO로 재직했다. 누이는 세계 탄산음료 시장에서 ‘코카콜라’에 밀려 만년 2위에 머물렀던 후발주자 펩시를 100년 만에 1위로 올려놓은 장본인이다. 그가 CEO로 있는 동안 매출은 80% 이상 늘었고 주가는 78% 올랐다.

◇ ‘당찬 여성 CEO’ 누이를 있게 한 어머니의 가르침

“얘야, 넌 무엇이든 될 수 있단다.”

1955년 인도 남부 첸나이 지역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누이를 펩시코 CEO이자 회장으로 키운 건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 매일 저녁 식탁은 가르침의 장(場)이었다. 여성에게 엄격한 인도에서 어머니는 저녁을 먹을 때마다 누이에게 “넌 뭐든지 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누이는 이를 외국인이자 유색인종, 여성인 자신을 당당한 CEO로 만든 원동력으로 여겼다.

누이는 인도 마드라스 크리스천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인도경영대(IIM)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그는 인도에서 직장을 다니다 1978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예일대에서 다시 MBA를 딴 누이는 컨설팅 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 휴대폰 회사인 모토로라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는 1994년 제너럴일렉트릭(GE)을 마다하고 펩시코에 합류했다. “펩시코를 당신을 위한 특별한 공간을 만들겠습니다.” 당시 펩시코 CEO였던 웨인 칼로웨이의 말은 누이를 펩시코로 이끌었다.

펩시코에 입사한 누이는 ‘여성 신화(神話)’를 써 내려갔다. 누이는 부사장,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쳐 2006년 10월 여성 최초로 펩시코 CEO가 됐다. 그는 ‘유리 천장’을 차례로 깨부쉈다. 누이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듬해 5월에는 회장직까지 맡았다. 그는 펩시코 수장으로서 감성 리더십을 선보였다. 누이가 펩시코 임원들의 부모님과 배우자에게 “펩시코의 훌륭한 인재로 키워줘서 감사하다”고 편지를 쓴 것은 그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누이는 회사에서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무슨 일을 하든 가정에서의 역할에도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신조도 어머니의 가르침에서 나왔다. 누이가 펩시코 회장이 됐다는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하려 하자 어머니는 대뜸 누이에게 “나가서 우유를 사 와라”고 했다. 누이는 서운한 마음에 어머니에게 “펩시코 회장이 됐는데 왜 내게 우유나 사오라고 하냐”고 물었다. 돌아온 건 어머니의 꾸짖음이었다. “펩시코 회장이라는 왕관은 차고에 두고 오렴. 펩시코의 회장일지라도 네가 집에 오면 넌 우선 아내이자 엄마란다.”

 인드라 누이는 1955년 인도 남부 첸나이 지역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 어머니의 가르침은 그를 당찬 여성 CEO로 만들었다. /펩시코
인드라 누이는 1955년 인도 남부 첸나이 지역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 어머니의 가르침은 그를 당찬 여성 CEO로 만들었다. /펩시코
◇ 탄산음료 회사에서 ‘종합 음료·식품 회사’로

누이는 사업을 다각화하고 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해 펩시코를 1위 음료·식품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2005년 12월 펩시코가 112년 만에 시가총액으로 코카콜라를 앞지른 것이다. 2018년 포춘 500대 기업에서도 45위에 이름을 올리며, 87위인 코카콜라를 따돌렸다.

전략기획과 구조조정 업무에 뛰어난 누이는 콜라를 필두로 한 탄산음료 시장의 한계를 예측했다. 누이는 펩시코에서 탄산음료 이미지를 지우고 종합 음료·식품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선포했다. 누이는 음료 사업 분야를 넓혔다. 누이는 타코벨과 피자헛, KFC 등 펩시코의 패스트푸드 부분을 정리하고 주스업체 ‘트로피카나’와 스포츠음료 업체 ‘퀘이커오츠’를 인수했다. 또 스낵업체 토스티토스 등도 인수해 식품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최근에는 야채·과일칩 업체인 ‘베어 푸드’을 인수했다.

이 중 2001년 인수한 퀘이커오츠가 ‘게임체인저’가 됐다. 퀘이커오츠는 시리얼과 이온음료 ‘게토레이’ 생산업체다. 당시 스포츠음료 시장에서 8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보이며 코카콜라의 ‘파워에이드’를 크게 앞섰다.

 펩시코 안에는 펩시콜라를 비롯해, 트로피카나 케이커오츠 등이 있다. /펩시코
펩시코 안에는 펩시콜라를 비롯해, 트로피카나 케이커오츠 등이 있다. /펩시코
누이는 퀘이커오츠를 선두에 두고 건강식품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해 실적을 향상시켰다. 그 결과 소비자의 탄산음료 퇴치운동으로 선호도가 크게 떨어진 콜라보다 이온음료·주스 등을 앞세워 코라콜라를 이길 수 있었다. 2010년 누이가 청소년 건강을 위해 “2012년까지 전 세계 학교에서 고열량 탄산음료를 팔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펩시코의 이미지에 도움을 줬다.

회사의 전략을 바꾸면서 갈등도 있었다. 행동주의 투자자로 유명한 넬스 펠츠 회장은 2013년 누이에게 “실적이 부진한 음료 사업을 분사하라”고 했지만 누이는 “음료와 스낵 사업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면서 이를 거절했다. 누이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사업 전략을 펼쳤고 2013년 3분기 흑자를 냈다. 2014년에는 코카콜라 주가의 배에 달하는 주가 상승세를 보였다. 누이의 완벽한 승리였다.

◇ 누이를 곤경에 빠뜨린 ‘레이디 도리토스’

이런 누이에게도 흑역사는 있다. ‘레이디 도리토스’ 사건이다. 펩시코가 생산하는 도리토스는 옥수수 칩 겉면에 치즈와 칠리소스 가루가 뿌려져 있는 미국인의 국민과자다. 칩을 집어먹고 나면 손가락에 소스 가루가 묻는데, 맛있어서 손가락을 쪽쪽 빨며 먹게 된다. 봉지를 거꾸로 집어 든 채 입안으로 과자 부스러기와 소스 가루를 털어 넣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1월 사달이 났다. 누이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레이디 도리토스라는 여성용 도리토스를 만들겠다”고 한 것이다. 누이는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크게 과자 씹는 소리가 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과자 부스러기를 입에 털어 넣거나 손가락을 빨기를 싫어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레이디 도리토스는 열량이 낮고, 손가락에 소스 가루가 많이 묻지 않으며, 크기가 작을 것”이라고 했다.

 펩시코가 생산하는 도리토스는 옥수수 칩 겉면에 치즈와 칠리소스 가루가 뿌려져 있는 미국인의 국민과자다. /도리토스
펩시코가 생산하는 도리토스는 옥수수 칩 겉면에 치즈와 칠리소스 가루가 뿌려져 있는 미국인의 국민과자다. /도리토스
발언은 역풍을 맞았다. 여성들은 “과자를 먹는데도 여자, 남자가 따로 있느냐”며 “여성이 CEO가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하냐”고 비판했다. 한 여성 토크쇼 진행자는 누이의 말을 풍자하며 도리토스 봉지를 입에 털어 넣고 손가락을 빠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펩시코는 “레이디 도리토스를 출시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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