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부르카 입은 여성에 ‘우체통’ 막말…“영국판 트럼프”

입력 2018.08.07 11:23

보리스 존슨<사진> 전 영국 외무장관이 이슬람 전통 복장인 부르카를 입은 여성을 ‘은행 강도’, ‘우체통’ 등으로 표현해 6일(현지 시각) 영국 평등·인권위원회(EHRC)에 신고됐다. 부르카는 무슬림(이슬람 교도) 여성 복장 중 가장 보수적인 옷으로, 머리부터 발 끝까지 전신을 가리는 넉넉한 넓이의 겉옷이다. 눈 부위도 망사로 된 천으로 가린다.

존슨 전 장관은 이날 텔레그래프 기고문을 통해 “부르카 착용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데에 반대한다”고 밝히는 과정에서 이 같은 표현을 썼다. 덴마크는 지난 1일부터 공공장소에서 부르카와 니캅(부르카에서 눈을 가리는 망사 부분만 없는 복장)을 금지하는 법을 적용 중이다. 프랑스와 독일, 벨기에, 오스트리아에서는 이미 공공장소에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복장을 전면 또는 일부 금지하고 있다.
존슨 전 장관은 “부르카가 억압적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며 “여성들에게 얼굴을 가리라고 하는 것이 기괴하고 일종의 괴롭히는 행위라는 데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코란(이슬람 경전)에도 이런 관행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없다”고 했다. 실제 코란은 ‘이성을 유혹할 수 있는 신체 부위를 가려야 한다’고만 밝힐 뿐, 특정 복장의 명칭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존슨 전 장관은 이어 “여기서 더 나아가자면, 난 사람들이 우체통처럼 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선택하는 건 정말 웃기는 일이라고 본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 은행 강도처럼 하고 등교하면 학교와 대학들은 그들의 얼굴 가리개를 벗으라고 요구해야 한다”며 “기업과 정부 기관도 직원들이 상대방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복장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도 했다.

존슨 전 장관은 다만 공공장소에서 이를 규제하는 건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다. 국가가 성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부르카와 니캅의 전면 금지가 ‘이슬람 문명과 서구 문명이 충돌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급진주의자들에 힘을 실어, 종교와 관련된 모든 상징을 단속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도 했다.

 부르카를 입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 / 미국 국제개발처(USAID)
부르카를 입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 / 미국 국제개발처(USAID)
논란은 기고문 내용이 공개되자마자 거세게 일었다. 영국 이슬람 평의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존슨 전 장관은 극우파들에게 아첨하며 이익을 쫓고 있다”며 “특히 ‘이슬람포비아(Islamophobia·이슬람공포증)’와 무슬림에 대한 혐오가 걱정스러울 정도로 곳곳에 스며들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가 이런 말을 한 데에 매우 유감이다”고 했다.

영국 보수당 내에서 ‘보수 이슬람 포럼’을 이끄는 모하메드 아민은 존슨 전 장관의 기고문이 무슬림 여성들에 대한 혐오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아민은 “보리스 존슨은 영어의 달인”이라며 “그는 그의 언어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가 그런 글을 쓰기로 선택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고 했다.

무슬림 여성 최초로 영국 외무부에서 중동·아시아 담당 부장관에 올랐던 바로네스 와시 전 보수당 공동의장은 존슨 전 장관이 ‘개 호루라기(dog whistle·직접적이진 않지만 특정 집단이나 사람을 노린 정치적 메시지)’를 분 것이라고 비판했다. 존슨 전 장관이 무슬림에 대한 일부 영국 국민들의 반감을 노리고 이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노동당의 데이비드 래미 하원의원은 존슨 전 장관을 평소 막말을 일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비유했다. 래미 의원은 “영국에서는 거리의 폭력배들이 무슬림 여성들의 부르카를 강제로 벗기고 있는데 존슨은 그들을 ‘우체통 같다’고 조롱했다”며 “우리의 파운드 샵(영국의 저렴한 생활용품 잡화점) 도널드 트럼프가 추잡한 선거 야망을 위해 이슬람포비아 불길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 정부는 공공장소 복장 규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재확인했다. 영국 총리실 대변인은 이날 “이 사안에 대한 정부의 오랜 입장은 명확하다. 우리는 공공장소에서 얼굴 가리개를 금지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그런 권위적인 접근은 종교적 관용과 성평등을 중시하는 영국적 가치와 맞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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