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이 간과한 것

조선일보
  • 장영준·중앙대 영문과 교수
    입력 2008.12.23 21:59 | 수정 2008.12.23 23:01

    '4기능 종합평가'는 과욕
    수능과 분리땐 추진력 약화

    장영준·중앙대 영문과 교수
    정부가 '국가 영어능력평가시험'을 개발하여 2012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주요 영어평가시험의 응시자는 대략 연 240만 명 정도이고, 이 중 약 220만 명이 토플(TOEFL), 토익(TOEIC) 등의 해외 시험에 응시한다. 초·중등학생 해외 시험 응시자도 약 60만 명에 이른다. 영어평가 시장의 높은 해외의존으로 연간 230억원 규모의 외화가 유출될 뿐 아니라, 서버다운으로 인한 시험 파행과 같은 피해 등을 고려할 때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국가 영어능력평가시험'은 일단 발상 자체는 좋다.

    그러나 이 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발표 내용을 보자. 시험은 3 등급으로 개발하고, 1급은 대학 2~3학년 수준, 2~3급은 고등학교 학생용으로 입시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세한 추진내용은 알 수 없으나 일단 발표 내용대로라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첫째, 평가목표와 교육목표가 일치하지 않는다. 교육목표는 '영어 의사소통 능력 제고'인데, 평가목표는 읽기·듣기·말하기·쓰기 등 소위 4기능을 측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능력평가를 하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 국민이 왜 모두 영어 '쓰기' 능력이 필요한가? 외국의 사례를 보아도 중등 수준의 외국어 실력에서 쓰기능력은 다른 기능들에 비해 그리 높지 않다. 미국의 수능인 SAT의 외국어 시험도 읽기와 듣기만을 평가하지, 쓰기나 말하기는 평가하지 않는다. 표준화된 평가보다는 특화된 평가를 요구하는 추세에서 볼 때 '4기능 종합평가'는 자칫 아무런 목적에도 맞지 않는 시험이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둘째, 3등급 구분의 근거가 미약하다. 1급이 평가하고자 하는 '대학 2~3년 수준의 영어실력'이란 게 뭘 말하는 것인가? 현재 국내 대학의 영어강의 비율은 미미하고, 원서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읽기 중심이다. 이게 이해수준인가, 표현수준인가? 평가결과를 취업과 해외유학에 활용한다고 하는데, 이는 (현 정부의) 자율화 기조에 배치될 뿐 아니라 비현실적이다. 무시험으로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회사들이 늘어나는 한편으로, 특정한 영어능력을 요구하는 회사들도 있는데 이들이 4기능 종합평가를 채택해야만 할 이유는 없다. 평가결과를 유학에 활용한다니, 어떻게? 국비장학생 선발에 활용하는가, 아니면 미국 대학들이 유학생 선발에 활용하도록 한다는 말인가. 비현실적이다.

    셋째, 대학의 교육현실과 동떨어졌다. 3급은 대학에서 '실용영어활용 수준'의 학과 공부에 필요한 수준으로 개발한다고 하는데, 이런 학과는 없다. 실용영어 수준? 실생활의 의사소통 수준 아닌가. 대학에서는 그런 영어를 사용하여 '전공수업'을 하지 않는다. 원서를 사용하든 원어 수업이든 적어도 실용영어를 '훨씬' 상회하는 (토플 수준의) 영어실력이 필요하다. 환언하면 3급은 대학입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넷째, 수능 대체여부를 2012년에 결정하기로 유보한 것은 일단 신중한 결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입시와 결부되지 않은 영어정책이 실효를 거두기는 어렵다는 경험칙으로 볼 때, 이 정책의 성공 조건은 상당히 불충분하다. 입시와도 상관이 없고, 유학에도 활용될지 어떨지 모르는 시험에 누가 응시할 것인가? 소극적 태도로는 추진력을 얻을 수 없다.

    다섯째, 말하기와 쓰기 평가도구를 개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교육 없이 평가시험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시험과 학습이 늘어나는데 사교육이 줄어든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다. 쓰기도 분명 의사소통능력의 하나지만, 중등 영어교육 목표와 정교하게 연계되지 않은 평가도구 논의는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 평가도구 개발과 '영어교육 격차해소'가 무리하게 연결된 것은 아닌지 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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