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프라이드의 화려한 잔치 '남제'의 시즌이 돌아왔다. 다른 때와 달리 공중파 TV와의 계약 체결이라는 과제를 안고 이번 축제에 임하는 DSE사의 각오는 비장하기 이를 데 없지만, 전 세계 팬들은 그 비장함이 더욱 호화로운 카드로 연결되리란 기대 속에서 나름대로의 전망을 내놓기에 여념이 없다.

최근 발표된 첫 카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vs 마크 헌트'에 대한 뜨거운 반응만 봐도 팬들이 이번 남제에 걸고 있는 엄청난 기대가 느껴진다. 일각에서는 무차별급 GP에서 조쉬 바넷에게 허망한 패배를 기록한 헌트가 타이틀전에 나설 자격이 없다는 비판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매치업이 현 시점에서 DSE가 내놓을 수 있는 최상의 효도르 관련카드라는 것이다. 헌트의 실력이 어떻건 간에, 적어도 이미 세 번이나 써먹은 노게이라 카드나 부상 및 무리한 스케줄로 지쳐 있는 크로캅이나 조쉬 바넷 카드보다는 훨씬 낫다. 거기다 '그래도 혹시'라는 기대를 줄 수 있는 핵주먹까지 갖고 있는 헌트인만큼, 현재 상황에서 효도르의 상대로 그만큼 적합한 인물은 찾기 힘들다.

헤비급에서 예상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카드는 '후지타 vs 크로캅' 전이다. 언젠가는 이루어져야 할 이 두 거물의 두 번째 만남을 위한 무대로서 남제보다 더 적합한 곳은 없다. 무관의 K-1 파이터에 불과했던 크로캅을 프라이드 최고의 스타로 변모하게 했던 첫 번째 관문 역할을 했던 후지타, 이 황금의 스토리라인을 가진 두 스타가 만난다는 것은 유난히 '인연'이란 테마에 열광하는 일본 팬들의 가슴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미들급에서는 역시 챔피언 실바의 행보에 가장 눈길이 간다. 개인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얘기가 돌았던 안토니오 호제리오 노게이라와의 승부가 가장 재미있는 조합이 될 것으로 본다. 특히 호제리오가 최근 복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타격에 부쩍 자신감이 붙었을 것을 감안한다면 맹렬한 타격전이 벌어지리란 기대도 해볼 만하다. 하지만 브라질 현지에서는 아로나와 호제리오의 남제 출전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돌고 있다고는 해도, 프라이드가 발표한 출전선수 명단에는 호제리오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이 대결의 성사여부는 미지수다.

아로나와의 3차전 얘기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이는 결코 남제를 위한 최상의 매치업이라 볼 수 없다. 문제는 비록 논타이틀전으로 치러진다 해도 둘 간의 대결은 너무나 진지한 양상으로만 흐를 거란 사실이다. 이 둘처럼 실력도 비슷한 데다 대전 경험까지 있는 선수들끼리 만나면 화려한 공방전이 나오기란 참 어렵다. 이미 두 번이나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인 사자와 호랑이를 또다시 싸우게 하면 서로 죽이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경계를 강화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닌가.

차라리 체급을 초월해 실바와 호드리고 노게이라 간의 대결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비록 헤비급이라 해도 호드리고는 타격 스타일 및 파워를 비교해 봤을 때 크로캅이나 효도르 등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실바 입장에서는 한결 수월하게 자신의 장기를 발휘해 볼만한 상대인 것이다. 둘 다 프라이드 내에서 외국인 선수로서는 최고의 네임밸류를 갖고 있다는 점도 흥행 면에서 플러스 요인이다.

지난 해 메인이벤터로 등장했던 요시다 히데히코의 행보도 주목을 받고 있다. 요시다는 현재 헤비급도 미들급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인데, 크로캅 전에서의 패배로 인해 헤비급에서의 한계는 일단 명확해진 것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내년의 미들급 GP에 전념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남제에서 그에 대한 선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하나는 현재 출전선수 명단에 들어있는 쇼군이나 아로나 등 미들급 탑클래스들과의 빅매치를 통해 메인 이벤터로 등장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미노와 이쿠히사처럼 부담이 덜하면서도 인지도가 있는 상대와의 일전을 통해 건재함을 과시하며 내년 GP를 대비하는 게 될 것이다. 또, 이와는 별개로 요시다가 종합격투가로 데뷔했을 때부터 늘 따라다녔던 ‘유도 vs 유술’ 최강전 컨셉의 호드리고 노게이라 전이 비로소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다.

무사도급에서는 이미 아오키 신야와 길버트 멜렌데즈의 대결이 거의 확정적인 듯하며, 웰터급 GP 최대의 행운아 미사키 카즈오와 댄 핸더슨, 고미 다카노리와 이시다 미츠히로 간의 양 체급 타이틀전이 열릴 가능성도 높다. 특히 다카다 본부장이 얘기한대로 일본인 대결 카드가 1~2장 들어가야 한다면 '고미 vs 이시다' 전은 그 중 최상의 선택이 될 것이다.

또 '이바라키 삼형제'의 멤버들인 사쿠라이 하야토와 카와지리 타츠야가 '눈썹 없는 강자' 요아킴 한센과 갖고 있는 인연도 주목해볼 만하다. 사쿠라이는 무사도 GP에서 한센과 명승부를 펼친 바 있고, 카와지리는 슈토 타이틀전에서 한센의 급소 가격으로 인한 개운치 못한 승리를 거둔 바 있다. 어느 쪽이 한센과 붙건 간에 경기의 재미와 확실한 스토리 라인이라는 두 마리 토끼는 이미 보장된 것으로 보인다.

마치며...

DSE 사가 공공연히 얘기하고 있듯이 이번 남제는 정말 중요하다. 비록 프라이드의 인기가 여전히 하늘을 찌르고 있지만, 공중파 방영 없이 현재의 규모를 유지해 나간다는 것은 어렵다. 후지 TV와의 트러블 이후 쭉 프라이드를 지켜봐온 몇몇 방송국들이 확실히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위해 달려들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중대한 임무가 이번 남제의 어깨에 걸려 있는 것이다. 이미 효도르 vs 헌트 카드를 통해 이번 대회에 임하는 각오가 가볍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DSE가 앞으로 또 어떤 깜짝 매치업을 터뜨릴 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