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는 그야말로 ‘슈퍼 코리안 위크’였다. 한국에서는 총 네 명의 스피릿 MC 웰터급 최강자들이 제 2기 슈퍼 코리안을 향한 마지막 전투를 치렀고, 일본에서는 ‘원조 슈퍼 코리안’ 데니스 강이 세계 최고의 격투 대회 프라이드의 웰터급 GP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레이스에 나선 모든 선수들이 그동안 흘린 피와 땀을 증명하듯 멋진 파이팅을 보여주었지만, 그 중 스피릿MC 웰터급 초대 챔프로 등극한 남의철과 당당히 프라이드 무대에서 그 이름을 알린 데니스 강이 보여준 투혼은 단연 돋보였다.

단 하나의 챔피언 자리를 향해 모든 것을 불사르며 격투기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주말을 만들어 주었던 두 사나이들의 강력했던 승리에의 의지, 그리고 앞으로 그들이 나아가야 할 바를 되짚어 보도록 하자.

자랑스런 준우승, 데니스 강

프라이드 웰터급 GP 결승이 시작되기 30분 전, 갑자기 미사키 카즈오가 파울로 필리오를 대신해 출전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데니스 강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런 급격한 변화와 시간의 촉박함 속에서 당황해하며 허둥지둥댔을 것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경기 후 한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데니스 강은 그런 상황에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얼른 그 변화를 받아들인 후 작전 수정에 들어갔었다고 밝혔다. 비록 그 작전대로 경기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그런 불안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대처했던 그의 마인드 컨트롤은 역시 세계 정상급이었다.

이러한 데니스의 의지는 오른팔 부상에도 불구하고 경기 내내 빛을 발했다. 초반 그라운드 전으로 몰고 가려는 작전을 충실히 수행했던 데니스는 1라운드 후반부터 미사키의 타격을 수차례 허용하며 아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불굴의 투혼으로 명승부를 이뤄냈다. 특히 지쳐 있었던 데다가, 오른팔 부상으로 자신의 주무기인 라이트 스트레이트마저 봉쇄당했던 그가 미사키와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그 강한 정신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그토록 강했던 정신력을 미처 따라잡지 못했던 데니스의 체력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데니스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너무 복싱연습에 치중한 나머지 주짓수 실력이 좀 감소한 것 같다며 앞으로 그라운드 파이팅 부분을 많이 보강하겠다고 얘기했지만, 더 큰 문제는 사실 체력이다.

물론 첫 경기 15분을 다 뛴 후, 부상까지 안고 올라와 또다시 15분 간 사투를 벌인 데니스가 지쳤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보여준 데니스의 움직임은 그 시간들을 감안한다 해도 다른 때와는 너무 달랐다. 사이드마운트를 점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집기를 허용하던 모습, 상대가 떨어지는 순간을 노려 공격을 날릴 때 혹은 상대의 펀치를 피하려 할 때 몸이 제대로 따라가지 않던 모습, 태클 실패 후 포지션 변경에 실패하고 무릎연타를 얻어맞던 모습 등은 원래 데니스가 보여줬던 빈틈없는 경기 운영과는 너무 달랐고, 이는 단순히 하루에 두 경기를 풀로 뛰어 지친 것이라기보다는 그동안 반복되어왔던 감량이 그의 몸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감량은 무조건 많이 뺀다고 좋은 게 아니다. 과거엔 경기 때마다 약 12kg을, 요즘엔 약 10kg 정도를 감량하는 것으로 알려진 데니스에게 최적의 체급은 오히려 85kg 혹은 87kg 정도로 보인다. ‘빨간 팬츠의 전사’ 타무라 키요시 역시 이 체급의 신설을 강력히 주장한 바 있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로서 실현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데니스 자신이 83kg란 체중에 자신의 몸을 더욱 맞춰가는 수 밖 엔 없다. 감량 때마다 자신의 몸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평소 체중을 만들어 낸다는 근원적인 과제를 해결한다면, 데니스의 최정상급 기량과 그 불굴의 의지는 GP 우승을 넘어 댄 핸더슨이 가진 챔피언 타이틀을 가져오기에 충분하다.

이제 내가 제왕이다, 남의철

데니스 강, 임재석으로 이어져온 ‘슈퍼 코리안 바통’을 넘겨받은 남의철은 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인물이다. 그의 경기가 있을 때면 장충 체육관의 온도는 어김없이 올라가기 시작하며, ‘남의철의 경기는 재미있다’는 진리는 이미 팬들의 가슴 속에 완전히 각인되어 있다. 늘 그렇게 화끈한 게임을 만들어 내면서도 아직까지 그는 무패의 전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GP에서도 남의철를 저지할 수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압도적인 강력함 뒤에는 혹독한 훈련과 결합된 천성적인 투혼과 의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번 GP에서도 계속 되는 선제 공격으로 매 경기마다 명승부를 만들어낸 남의철은 하나같이 카운터를 노리고 들어오던 상대들을 모두 쓰러뜨렸고, 그 바탕엔 역시 그의 강력한 의지가 깔려 있었다. 카운터를 얻어맞아도 당황해서 뒤로 물러나기는 커녕, 한번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더 강력한 스윙을 휘둘러댔던 것이다. 크로캅과 같은 기동력과 파괴력을 겸비하고 있지 않은 이상 이런 불도저에게 카운터를 날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승을 차지한 이후 남의철은 ‘투혼의 사나이’란 평과 함께 ‘붕붕펀치’란 닉네임도 같이 얻게 되었다. 무차별 난사되는 그의 각도 큰 훅 연타가 분명히 팬들을 열광시키기도 했지만, 그런 펀치로는 세계에 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도 함께 불러온 것이다. 남의철만큼 강한 파워를 갖고 있으면서도 김행기나 유우성보다 훨씬 다채로운 스탭과 빠른 스피드를 가진 외국의 강자들과의 대결을 생각해 본다면 이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대견스럽게도 남의철은 챔피언답게 이런 팬들의 지적을 겸허히 수용한다. 자신의 단점 뿐 만 아니라 국내 팬들의 눈이 프라이드나 K-1 등으로 인해 상당히 높아져 있는 부분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더욱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은 그런 비판을 받아들인 후 나름대로 기술적인 보강을 계속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GP에서도 남의철은 상당히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면을 모두 오픈시킨 후 타격을 날리던 인터리그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크게 휘두르되 턱만은 바싹 당긴 상태를 유지한다는 심플하지만 어려운 진리를 완전히 몸에 익혀 나왔던 것이다. 피나는 훈련과 실전 경험을 통해 턱을 바짝 당기고 상대의 목, 혹은 가슴으로 펀치를 날리면 적어도 큰 것은 허용하지 않고 상대를 파괴할 수 있다는 생존 법칙을 터득한 것이다. 또한 남의철이 그렇게 무차별 난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코리안 탑 팀 특유의 하드트레이닝이 가져다 준 레슬링 실력이 뒤를 받쳐줬기 때문인데, 그 부분 역시 한 경기 한 경기를 거치며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실 팬들이 그에게 보내주는 비판은 역으로 생각해 보면, 남의철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고 해석할 수 있다. 탱크 애벗이 KO 승을 거두면 팬들이 그 장면 자체에 열광하는 데에 그치지만, 효도르나 크로캅 등이 KO 승을 거두면 화끈함에 대한 열광 이상으로 그 기술적 완성도나 정확도 등에 대한 수많은 의견들이 오가는 것처럼, 팬들은 이제 남의철을 단순한 ‘KO 제조기’ 정도로 보지 않고, 스피릿 MC의 당당한 챔피언이자 앞으로 세계의 강자들과 대적할 만한 재목으로 인정하고 있다.

남의철이 그 성실성과 겸손한 자세, 그리고 불굴의 투지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국내를 넘어 세계 유수의 격투기 링에서 그 강함을 뽐내는 ‘한국산 불도저’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