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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없는 남극 바다…
해양과학 ‘청해진’을 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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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로스해(Ross Sea)’ 바다 속에서 황제펭귄 한마리가 날아올랐다. 잔뜩 먹이를 먹은 듯 힘이 넘치는 모습이다. 곧이어 다른 펭귄들이 떼를 지어 물을 박찼다. 날렵한 검은 윤곽들이 폭격 미사일 쏟아지듯 차례로 뭍으로 올랐다.

기사이미지 황제펭귄과 새끼 황제펭귄
기사이미지 남극 바다속 실버피쉬
기사이미지 아델리펭귄
기사이미지 웨델물범

로스해는 남극해양생물들의 천국이다. 전 세계 아델리펭귄의 38%, 황제펭귄의 26%, 남극 서식 바다제비류의 30% 이상, 범고래의 50%, 남태평양 웨델물범의 45%가 모두 로스해에 기대 살아간다.

우리나라 극지연구소 해양보호구역(MPA) 연구팀은 이 로스해 내 지정된 해양보호구역에서 생태계 및 해양생물자원 보존을 위한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아델리펭귄 5만여쌍이 번식하는 케이프할렛은 우리나라가 조사를 담당해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까밀라, CCAMLR)’에 매년 환경 변화를 보고한다.

기사이미지 아델리펭귄들이 극지연구소 MPA 팀 캠프 인근에서 무리지어 있다.
기사이미지 극지연구소 MPA팀원들이 생태계 조사 시 숙소로 사용할 캠프를 구축하고 있다.
기사이미지 김종우 박사가 아델리펭귄 둥지 인근에 모니터링 캠을 설치하고 있다.
기사이미지 MPA팀이 펭귄 둥지 수 조사를 위해 무인기(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로스해는 남극 빅토리아랜드를 따라 연안이 형성된다. 가장 하단에 미국의 맥머도기지와 뉴질랜드의 스콧기지가 자리를 잡고, 그 위로 테라노바만(灣) 지역에 이탈리아의 마리오주켈리, 독일의 곤드와나 기지가 터를 잡고 있다.

이 테라노바만에 위치한 남극장보고과학기지에서부터 케이프할렛까지 이르는 직선거리 약 320km는 사실상 로스해 북부 전반을 아우른다. 아직 다른 나라들은 이 곳 해양 연구를 활발하게 하지 못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연구 영향력이 가장 크다.

기사이미지 로스해 부근 지도
기사이미지 남극장보고과학기지
기사이미지 뉴질랜드 스콧 기지 David Saul, Wikipedia / CC BY
기사이미지 미국 맥머도 기지 Gaelen Marsden, Wikipedia/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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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외 강국들은 로스해 지역 연구 영향을 확대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다. 최근 로스해 연구에 뛰어들기로 결정한 중국은 남극장보고과학기지가 위치한 테라노바만인근의 인익스프레서블 섬에 남극기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남극기지가 테라노바만으로 들어오면 향후 남극장보고과학기지에서 케이프할렛에 이르는 북부 해역까지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로스해 연안 해역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만큼 어업 행위 등이 금지되지만 바다 속 자원 개발과 연구 주도권 경쟁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M. Murphy Wikipedia /CC BY

MPA팀은 지리적 이점을 살려 로스해 해양 과학 연구 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정훈 극지연 MPA팀 박사는 “국제사회가 해양생물자원 및 생태계 보존을 위해 로스해 일대에 관심이 높다”며 “장보고과학기지와 케이프할렛에 이르는 빅토리아랜드 연안의 바다는 과거 장보고가 개척한 해상무역의 중심 ‘청해진’처럼 해양과학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기사이미지 우리나라 극지연구소 MPA팀이 남극에서 해양생태조사를 하고 있다.
기사이미지 MPA팀은 남극 케이프할렛 아델리펭귄 둥지에서 조사활동을 벌인다.
기사이미지 해양 생물의 분변은 먹이 생태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사이미지 MPA팀이 웨델물범의 분변을 채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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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해에 널리 펼쳐져 있는 대륙붕은 다양하고도 풍부한 남극해 생물들을 길러내는 천연 창고 역할을 맡는다. 식물 플랑크톤에서 크릴, 남극은암치, 남극이빨고기(메로), 펭귄, 물범, 범고래 등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은 남극 생태계 건강성의 지표다. 때문에 이 지역의 연구는 범국가적 환경보전의 의미도 갖는다.

특히 우리나라는 까밀라 회원국임과 동시에 크릴, 메로 등 남극해 어업의 최대 수혜국 중 하나다. 그러나 이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해양생물자원 획득 수혜에 비해 보전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탄을 받아왔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은 지난 2015년 우리나라를 예비불법어업국으로 지정하려 했다. 당시 해양수산부 등 정부가 적극적인 원양어업 관리와 생물자원보존을 위한 과학적 기여 의지를 표명하면서 불법어업국 지정을 겨우 모면한 바 있다.

기사이미지 헬리콥터는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지역 조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운송수단이다.
기사이미지 MPA 조사팀원이 남극 바다얼음 밑에서 채집한 물고기를 들어올려 보고 있다.

김정훈 박사는 “사람이 거주하기 어려운 북빅토리아랜드의 중앙에 위치한 케이프 할렛은 로스해 연구에 있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면서 “장보고 대사가 청해진을 거점으로 국제 무역의 주도권을 확립했듯 우리도 케이프 할렛을 거점으로 로스해 북부의 연구주도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밤하늘을 연구하는 정종균 박사가 남극의 천문을 알려 드립니다"
극지연구소 하계 연구원들이 마리오쥬켈리 항공장에서 헬기를 떠나보내는 장면
아래로 스크롤
“남극 내륙기지 천문대… 우리도 첫 발 뗀다”
정종균 박사
정종균
천문연 박사
"남극 내륙기지 천문대… 우리도 첫 발 뗀다"
남극의 여름은 하루 24시간이 대낮과 같이 밝은 탓에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환경이다. 그런 백야의 남극을 찾은 천문학자가 있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에서 정종균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를 만나 올해 진행 중인 연구사업에 대해 물었다.
정 박사는 “남극은 지구에서 우주를 가지 않고도 실험하거나 관측할 수 있는 최적지에 해당돼 ‘하얀 화성(White Mars)’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라며 “1년 내 80% 이상 구름 한 점 없고, 미세먼지조차 찾아보기 힘들어 대기의 방해를 덜 받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혹한의 극지에서 찾고 있는 것은 남극 내륙부에 설치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극지 천문대다. 현재 극지연구소 ‘코리안루트(K-루트팀)’가 내륙으로 향하는 육상로를 확보하면 뒤를 이어 세워질 내륙기지 내에 전파망원경 등 우주 관측시설을 함께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 러시아, 일본, 뉴질랜드, 프랑스·이탈리아, 칠레, 아르헨티나, 핀란드 등 남극 내륙기지에 전파망원경을 비롯한 극지 천문대만 10여곳이 넘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극지천문대는 하나도 없어 이제 막 설립을 위한 첫걸음을 이제 막 뗐다.
Q. 남극까지 와서 우주를 관측하는 이유는
"남극은 하늘의 밝기, 대기 온도·습도, 가시거리, 대지 기반암의 안정성, 인적 자원 등 천문 관측에 필요한 기본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이다. 특히 남극은 미세먼지가 없고 바람이 없이 대기가 안정된 탓에 태양이 작게 보인다. 빛의 산란이 그 만큼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극은 이런 자연적인 조건을 모두 갖춘 천혜의 천문대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Q. 구체적으로 어디서 천문환경을 조사하나
"남극에서 우주를 관측하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인적자원과 비용이 필요한 일이다. 현재 초기 관측과 환경 연구 정도만 일부 하고 있다. 올해는 K루트팀과 함께 장보고기지를 내륙 극지활동을 지원하는 베이스기지로 삼아 내륙의 대기와 천문 환경을 조사하고 있다. 실제 내륙을 들어가서 보면 그야말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펼쳐진다"
Q. 지금까지 성과는
"우리나라의 극지연구 역사가 길지 않은 만큼 극지 천문대 건립은 이제 막 조사를 시작한 단계라고 보면 된다. 남극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장비를 실어나르기 쉽지 않고, 운송을 해도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최적화된 장비를 개발하려면 극지연구소와 천문연의 협력,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우리 기술로 전파망원경을 개발한 경험이 있는 만큼 천문대 건립이 아주 멀거나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Q. 남극에 자리잡게 될 천문대는 어떤 모습인가
"현재 서울 연세대와 울산, 제주 등에서 볼 수 있는 접시형 안테나가 바로 전파망원경이다. 물론 남극에 이 정도 크기를 설치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남극이라는 위치가 갖는 특성이 있어 낮은 단으로만 구성돼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오히려 신경써야 할 점은 극지의 혹한 등에도 장비가 운용될 수 있도록 최적화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장보고과학기지에서 꼼꼼한 준비과정을 거쳐 10년 내 남극 내륙에 천문대를 세우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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