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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무슨 일이…
빙하코어·달 탐사장비 개발 한창

“드르륵~ 드르륵~”
남위 74도 37분, 동경 164도 12분 지점에 위치한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앞 테라노바만(灣)에서 전동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드릴이 얼음을 뚫고 끝없이 들어가자 얼음을 파쇄하는 속도와 깊이가 계측기로 전송됐다. 모니터를 보고 있는 연구원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지난 12월 남극장보고과학기지 하계 연구 현장에서 만난 이홍철·유병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박사는 달 탐사장비 개발과 월면토 구현을 위한 연구에 한창이었다. 남극이 우주로 직접 가지 않고 달과 유사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까닭이다.

기사이미지 달 표면 시추장비를 사용해 연구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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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세계 강국들은 지구상 가장 혹한의 지역인 남극에서 우주와 지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단서를 찾고 있다. 남극 이빨고기, 크릴, 플랑크톤 등 해양 생물자원을 이용할뿐 아니라 지금까지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던 신 에너지 자원 발굴까지 과학 연구 경쟁이 치열하다.

남극은 1961년 남극조약 발효 이후 지금까지 주인없는 땅이다. 군사적 영토 점유 대신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를 위한 토대로 자리 잡았다. 다만, 남극조약 만료기간인 2048년 이후 각 나라가 다시 영토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러한 이유로 극지 과학자들은 남극에서 연구 성과를 많이 가져갈수록 향후 국가간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과 러시아는 남극대륙에 대한 영토 소유권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않고 미뤄놓고 있는 상황이다.

기사이미지 남극의 바다얼음은 1년 중 12월~3월 여름을 맞아 녹기 시작한다.
기사이미지 남극에는 이끼류도 서식한다.
기사이미지 김정훈 극지연구소 박사가 팀원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기사이미지 남극 바다얼음 밑에 서식하는 실버피쉬
기사이미지 남극장보고과학기지는 2014년 설립됐다.
기사이미지 아델리펭귄들이 극지연구소 연구원들이 생활하는 텐트를 방문했다.
기사이미지 남극장보고과학기지 내 이정표.
기사이미지 우리나라는 2014년 장보고기지 개소로 남극에 2개의 상주기지를 갖는 세계 10번째 나라가 됐다.

우리나라는 1985년 남극 해양생물자원에 관한 보존 협약(까밀라, CCAMILR)과 1986년 남극조약에 가입하면서 극지 연구에 첫 발을 내딛었다. 1989년에는 남극조약 협의당사국으로 격상돼 남극 자원 이용과 과학연구 분야 기여도 요구받았다.

남극 연구를 위한 우리나라의 토대는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다. 1988년 세종과학기지 건설에 이어 2014년 남극장보고과학기지가 문을 열자 우리나라는 남위 60도 이남 지역에 2개 이상의 상주 연구기지를 보유한 세계 10번째 국가가 됐다.

특히 장보고과학기지는 남극대륙의 심장부로 향하는 관문이다. 바다와 맞닿아 보급이 유리하고 남위 70도 이하 남극대륙 내 위치하고 있어 고층대기, 빙하 연구 등 지금까지 세종과학기지에서 할 수 없는 연구도 할 수 있다.

그동안 미국과 러시아, 이탈리아, 일본, 중국 등 세계 각국은 남극 내륙 연구에 힘을 쏟았다. 내륙기지를 건설해 대륙 밑 빙하 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 지구의 기원과 자원 탐색에 열을 올린 것이다.

기사이미지 남극의 주요 기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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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 연구 후발주자인 우리나라도 이제 내륙기지 건설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 극지연구소 K-루트 사업단이 장보고과학기지에서 남극점까지 주행거리 3000km에 이르는 육상로를 개척하는 중이다.

이 육상로가 확보되면 우리나라도 내륙기지 건설과 남극 얼음 밑에 숨어있는 호수 ‘빙저호’를 찾는 연구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현재 빙저호에는 영화 속 냉동인간을 구현할 수 있는 비동결세포나 알려지지 않은 고대 미생물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빙저호 탐사는 탄성파 탐사파를 통해 호수 생성이 가능한 후보지를 찾고, 시추 장비를 통해 호수까지 이르는 기술을 필요로 한다. 시추 장비의 경우 둥근 원통형의 얼음기둥인 ‘빙하코어’를 얼마나 깊은 곳에서 온전히 꺼내냐가 관건이다.

기사이미지 남극장보고과학기지에서 내륙으로 향햐는 길
기사이미지 극지연구소 MPA팀 대원들이 아델리펭귄 둥지를 보고 있다.
기사이미지 극지연구소 대원들이 설치한 무인캠은 아델리펭귄의 둥지를 관찰한다.
기사이미지 얼음 기둥 모양의 빙하코어는 과거의 시간을 간직한 타임캡슐로 불린다.
기사이미지 국제 공동 연구팀이 빙저호 ‘윌런스 호수’에서 퇴적물을 끌어올렸다 /네이처

빙하코어 속에는 100만년 이전의 공기가 갇혀 있다. 대기과학의 타임캡슐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실제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내륙기지 콩코르디아는 지하 3800m의 빙하코어를 시추해 86만년 전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정보를 밝혀냈다.

또 1991년 러시아 극지연구자들은 3만5000년 전 빙하코어가 다른 빙하코어와 달리 ‘베릴륨’의 양이 많다는 결과를 얻어 지구에서 150광년 떨어진 우주에서 당시 초신성 폭발이 있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김예동 극지연 극지지구시스템연구부(전 극지연구소장) 박사는 “빙저호 탐사나 달 탐사장비 개발 등은 세계에서도 이제 막 시작한 연구 분야”라며 “각국과 경쟁이 벌어지는 이곳이야말로 새로운 냉전의 현장”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이홍철·유병현 박사가 남극 얼음을 뚫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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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서 달 콜로니 건설 꿈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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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기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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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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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기연 박사
“남극서 달 콜로니 건설 꿈꾸죠”
‘백색 화성(White Mars)’. 얼음으로 뒤덮인 남극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지구에서 우주로 나가지 않고 가장 우주와 유사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람이 살만한 환경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을 우리 기술로 하고 있는 연구자들이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소속 이홍철·유병현 박사는 남극에서 달을 꿈꾸는 중이다. 이홍철 박사는 달의 내부를 시추하고 시료를 채취할 수 있는 장비 개발을, 유병현 박사는 달 표면의 흙을 구현하는 연구를 맡고 있다.
달 탐사는 인류의 오랜 숙원 중 하나다. 특히 달은 스페이스 콜로니 건설의 유력 후보지인 화성으로 가는 관문으로 여겨진다. 달을 이해하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 수 있으면 우주로 가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셈이다.
문제는 달 탐사에 필요한 장비를 지구에서부터 가져가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탐사 장비는 기능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경량화하고, 달에 짓게 될 시설은 최대한 표면에 쌓인 흙을 사용하는 것이 관건이다.
Q. 시추장비를 개발해도 달까지 운송이 쉽지 않을텐데.
이홍철 박사 “최종 목표는 달에 보내는 시추 장비를 개발하는 일이다. 이 시추 장비는 달 지반의 강도를 측정하는 일을 맡는다. 지반의 강도를 알게 되면 그 위로 시설을 지을 수 있는 지 없는 지를 판단할 수 있다. 지구에서부터 달까지 운송비용은 1kg 당 약 30억원 정도 일반 시추 장비를 작고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탐사 ‘로보(Rover)’ 중량이 약 20kg 정도라 여기에 맞춰야 한다.”
Q. 달에 얼음 형태의 물이 있다는데
유병현 박사 “세계적으로 달에 얼음 형태의 물이 있다는 보고들이 나오면서 남극에서 사전 테스트를 하고 있다. 월면토(달흙)와 물, 얼음이 같이 섞여 있는 상황을 가정해 실험을 진행한다. 우선 남극 바다얼음 위에서 먼저 시추장비를 시험하는 중이다. 바다얼음은 소금기가 있어 비교적 강도가 약하다. 향후 남극 내륙 얼음과 그 밑의 동결토를 대상으로도 시험을 한다.”
Q. 월면토는 어떻게 구현하고 있나
유 “달 탐사 장비 개발 등에 가장 기본이 되는 월면토는 우리 기술로 구현해 현재 85%까지 완성됐다고 보면 된다. 물리적인 성질은 다 맞췄고, 흙을 구성하는 성분을 조정하고 있다. 철 성분이 다량 포함돼 있는데 이 흙으로 건설재료를 만들 수 있는 지 여부도 연구되고 있는 중이다.”
이 “지금하고 있는 시추장비 실험은 표면에서부터 어디까지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지를 확인한다. 다만, 달 환경에서 구현 가능한 시추장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소재나 부품도 다 달 환경에 맞춰야 하는데 작은 베이링 하나부터 윤활유까지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조달하기 쉽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Q. 달 건설장비 개발은 언제 실현될 수 있나
이 “우주발사체 부분의 경우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뒤늦게 시작했지만, 우주 건설장비 개발 분야에 있어서는 거의 동등한 입장인 상황이다. 우리 시추장비 개발이 완료되면 이를 이용하겠다고 벌써부터 얘기하는 해외 기관들이 적지 않다. 월면토도 해외에서 먼저 구매 계약을 맺고 싶어하기는 마찬가지다. 우주 건설기술 개발은 연구원 주요 과제로 2024년까지 추진 중인데 올해 4년차다. 앞으로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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