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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바람에 침수된 둥지…
펭귄이 운다

12월 중순 남극 북빅토리아 연안 케이프할렛의 언덕은 울부짖는 아델리펭귄들로 가득했다. 5만여 쌍의 아델리펭귄들이 매년 생명을 잇기 위해 이곳을 찾지만, 허허벌판 위 놓인 둥지는 모두 눈과 물에 잠겼다.

키가 50cm 남짓한 어미 아델리펭귄은 쉽게 둥지를 떠나지 못하고 물 속에 떠다니는 알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부리를 이용해 이리저리 알을 밀어내보지만, 둥지 밖으로 알을 꺼내기는 힘겨워 보였다.

기사이미지 아델리펭귄이 물에 잠긴 알을 꺼내려 애를 쓰고 있다.
기사이미지 예상하지 못한 기상 탓에 아델리펭귄 둥지가 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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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해양생태를 조사 중인 김정훈 극지연구소 MPA(Marine Protected Area) 팀 박사는 “예상치 못한 강설로 인해 부화가 어려운 환경이 갖춰진 것으로 보인다”며 “눈이 녹아 둥지가 물에 잠기면 알의 부화온도를 맞출 수 없어 번식에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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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로스해 연안에 위치한 케이프할렛은 5만여 쌍의 아델리펭귄이 매년 번식을 위해 찾는 장소다. 우리나라 남극장보고기지로부터 약 400km 떨어진 거리에 있으며 바다와 땅이 맞닿아 해양 생태계 연구를 하기 최적화돼 있다.

기사이미지 아델리펭귄부부가 교미를 하고 있다.
기사이미지 아델리펭귄은 얼음 대신 땅 위에 작은 돌을 쌓아 둥지를 만든다.
기사이미지 아델리펭귄이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다.
기사이미지 둥지에 쌓을 돌을 물고 가는 아델리펭귄

일반적으로 아델리펭귄은 발 위에서 알을 품는 황제펭귄과 달리 작은 돌을 쌓아 둥지를 만든다. 보통 1년 전 찾았던 번식지 근처에 다시 집을 짓는데 이번엔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눈이 내리는 바람에 번식 성공률이 낮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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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최근 번식기에는 케이프할렛 인근에 ‘활강풍(카타베틱윈드)’이 불어닥치면서 알을 품고 있는 둥지에 눈이 덮쳤다. MPA팀의 1차 조사에서 기록된 최고 풍속은 초당 21m 이상. 아델리펭귄은 눈 바람 속에서도 알을 품고 있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온도는 알이 부화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작은 돌로 형성된 아델리펭귄 둥지는 땅의 습기를 피하고 눈이 녹아 생긴 물이 빠져나가는 배수 기능까지 갖지만, 낮은 지대 탓에 물이 빠지지 못하면 번식 성공률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기사이미지 아델리펭귄 번식지에 눈이 덮쳐 부화 성공률이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기사이미지 아델리펭귄 둥지 수를 확인하는 연구에는 무인기(드론)이 활용된다.
기사이미지 델리펭귄은 일반적으로 2개의 알을 낳는다.

극지연구소 MPA팀이 2016년 이래 항공기(헬리콥터)와 무인기(드론)을 사용해 95m 상공에서 아델리펭귄 집단을 촬영한 결과에 따르면 케이프할렛 지역의 아델리펭귄 둥지수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2018년 확인된 둥지수는 4만6991개로 2017년 조사에서 산출된 둥지수 4만7373개보다 382개(0.81%)가 줄었다. 2년 전인 2016년 예비조사에서 산출된 5만3028개에 비해서는 6037개(11.38%)가 감소했다.

눈이 둥지를 침범하는 경우는 최근 들어 자주 발생한다. 2017~2018년 새끼 아델리펭귄의 생존율은 다른 날보다 풍속이 강한 날과 강설이 관측된 기간동안 크게 떨어졌다.

같은 기간 조사된 케이프할렛 지역 내 아델리펭귄의 번식 성공률은 둥지당 0.47마리다. 번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기온, 천적의 수, 먹이 환경의 변화 등으로 크릴 등 먹이 분포 상황과 해양 환경 요인에 의한 영향이 가장 클 것으로 분석된다.

기사이미지 2018년(왼쪽) 눈이 침범하지 못했던 지역이 2019년 눈으로 뒤덮여 있다.
기사이미지 눈 속에 파묻힌 아델리펭귄의 둥지
기사이미지 남극도둑갈매기가 알을 훔치려고 하자 아델리펭귄들이 맞서고 있다.
기사이미지 야생에서 도태된 아델리펭귄의 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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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박사는 “아델리펭귄들이 둥지를 지을 당시에는 눈이 없는 자리를 선택했겠지만 알을 낳은 이후 활강풍에 날려온 눈 때문에 둥지와 알이 눈 속에 잠기게 됐다”라며 “번식지에서의 기상이변도 아델리 펭귄 생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김정훈 박사가 아델리펭귄과 남극 바다의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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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수의 고향을 지켜주세요"
김정훈 박사
김정훈
극지연구소 박사
"펭수의 고향을 지켜주세요"
"펭수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우리나라 남극 펭귄 연구로도 이어져야 합니다. 펭귄을 알면 남극의 해양 생태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환경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죠"
남극장보고과학기지 해양생물연구동에서 만난 김정훈 극지연구소 해양보호구역(MPA)팀 박사는 남극 펭귄 연구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펭귄은 남극 해양생물의 지표종으로 개체수, 산란 수, 영양 상태 등에 따라 남극의 해양 환경 변화를 몸소 보여준다.
김 박사는 남극도둑갈매기 연구를 시작으로 극지와 인연을 맺었다. 날아가는 남극도둑갈매기를 손으로 낚아채 인식표를 다는 기술은 그의 전매특허로 유명하다. 이에 우리나라 극지연구 분야에서는 ‘스쿠아 킴’으로 통한다.
지금은 남극 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이하 까밀라, CCAMILR)에서 해양보호구역 조사를 맡아 남극 빅토리아 연안의 아델리펭귄 조사 등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펭귄도 언젠가 멸종 위기종이 될 수 있다”면서 “올해 남극의 여름 바다가 예년에 비해 빠르게 녹고 있다”고 말했다.
Q. 펭귄이 왜 남극 바다 생태계를 대표하는 종인가
"펭귄은 남극 바다 생태계의 최고차 소비자로 환경변화 지표종이다. 남극의 주요 생물자원인 크릴을 먹고 산다. 쉽게 말해 펭귄을 통해 생태계를 간접 평가할 수 있다. 겨울동안 바다얼음이 풍부하게 잘 형성되면 크릴 유생이 얼음 밑 규조류를 먹고 잘 자란다. 크릴의 영양상태가 좋으면 펭귄 번식 성공률이 높아진다. 우리는 펭귄을 통해 남극 바다에 어떤 일이 있는 지를 추측하고, 환경적 요인을 해석한다"
Q. 언젠가 펭귄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지구 온난화가 멈추지 않고 더 심해질 경우 바다얼음의 유실은 계속될 것이다. 최근 기후변화모델을 이용해 남극에 서식하는 황제펭귄의 95%가 사라질 수 있다는 논문도 나왔다. 황제펭귄은 바다얼음 위에서 새끼를 키우기 때문에 얼음이 일정기간 녹지않고 버텨줘야 한다. 바다얼음이 지금보다 더 빨리 녹으면 성체 펭귄이 더 이상 없을 수 있다"
Q. 우리나라의 펭귄 연구, 어디까지 왔나
"사실 2015년 전 만해도 개체 수를 세는 기초조사 외에는 펭귄 연구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다행히도 최근 해양생물 보전과 이용에 대해 환경부와 해양수산부가 관심을 갖고 지원을 늘리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요즘은 연구 기법도 다양해져서 무인기를 이용해 항공촬영을 하거나 유전자 분석 기법을 도입해 생물을 분석할 수 있는 연구를 한다"
Q. 펭귄에 대한 관심과 달리 연구할 사람은 갈수록 없다
"기초과학 분야 중에서도 생물학은 계속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에서 전공하는 학생도 계속 줄어 차세대 연구원을 배출하는 데 애를 먹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 맡고 있는 남극해양보호구역 사업과 같은 범국가 연구사업을 지속하려면 훌륭한 연구진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점점 국내 인력만으로 팀을 구성하기가 쉽지 않다"
Q. 앞으로 남은 과제는
"아직 재원 마련이나 연구 장비 확보에 있어 부족한 것이 많지만, 계속 연구를 진행하다보면 우리 손으로 남극해 전반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오리라고 확신한다. 남극 로스해 에서 남극이빨고기와 웨델물범과의 관계, 황제펭귄이 먹고 사는 어류 탐색, 크릴의 수 조사를 통해 해양 생태계 전반을 파악하면, 지구 환경보전의 길을 제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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