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16일 홍석현(洪錫炫) 전 주미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홍 전 대사는 중앙일보 사장이던 1997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의 지시를 받은 이학수(李鶴洙) 삼성 구조조정본부장과 함께 여야 대선후보, 검찰 간부 등에게 100억여원을 건네는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안기부 비밀도청조직 미림팀의 도청테이프에 묘사돼 있다. 이 때문에 홍 전 대사는 참여연대에 의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이 혐의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최저 징역 5년, 최고 무기징역이 선고될 수 있다. 공소시효(10년)도 남아있다.

16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한 홍석현 전 주미대사가 민주노동당들이 그의 처벌을 요구하는 기습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검찰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홍 전 대사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검찰에서 상세히 밝히겠다"고 말한 뒤 조사실로 향했다. 홍 전 대사의 검찰 출석은 1999년 9월 30일 보광그룹 탈세사건으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소환돼 구속된 후 6년 만이다. 홍 전 대사가 검찰청에 도착한 직후 민주노동당과 'X파일 공동대책위' 소속 인사 7~8명이 '이건희·홍석현을 구속·처벌하라'는 현수막을 펼쳐들고 "홍석현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기습시위를 벌였다.

홍 전 대사의 소환으로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 안기부 불법도청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된 셈이다.

검찰은 앞서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김인주(金仁宙) 삼성 구조조정본부사장, 이회창(李會昌)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동생 회성(會晟)씨, 서상목(徐相穆) 전 의원 등 관련자를 소환 조사했다.

한편 15일 임동원(林東源)·신건(辛建) 전 국정원장의 구속으로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국정원 불법도청에 대한 수사는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들의 구속영장에서 2002년 11~12월 한나라당이 폭로한 '국정원 도청문건' 중 상당수가 사실로 밝혀짐에 따라 김영일(金榮馹)·이부영(李富榮) 전 의원을 상대로 입수 경위에 대한 조사가 예상된다. 또 도청정보가 청와대, 정치권에 보고됐는지도 남은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