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뒷골목은 발목을 덮는 쓰레기 천지였다. 며칠 전 내린 폭우로 동네 전체가 20~30㎝ 정도 잠겼다 물이 빠진 탓이다. 물이 덜 빠진 곳엔 두 달 후면 수확할 벼가 누워 썩고 있었다. 한 달 전 방글라데시 전국에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350여개의 폭탄을 동시에 터뜨렸다. 이 때문에 외국인들은 외출을 삼가고 혼자 거리를 걷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에겐 폭탄 테러보다 가난이 더 무섭다. 주민 나마(42)씨는 "매년 전 국토의 70%가 홍수로 물에 잠긴다. 아주 서서히 온 도시를 물 속에 가둔다. 이곳의 가난도 홍수와 닮았다"고 했다. 차에서 내려 발걸음을 내딛기 무섭게 벌거벗은 아이들이 달려와 입에 손을 대는 시늉을 하며 먹을 것을 달란다. 국민 1인당 연 소득액이 360달러(36만원)에 불과하고, 남한보다 약간 더 큰 면적(14만㎢)에 1억4000만명이 부대끼며 사는 나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이곳에서 책과 공부는 사치다. 국민 90% 이상이 문맹이다. 아이들은 열 살도 되기 전에 거리로 내몰려 돈을 번다. 이 때문에 빈곤 아동 교육은 외국 NGO(비정부단체)들의 몫이다. 이곳에서 빈민아동 구호사업을 펴고 있는 굿네이버스 이경엽 지부장은 "당장 돈을 벌지 않으면 굶기 때문에 아이들을 공부시키지 않는 가정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굿네이버스가 무료로 운영하는 밧다라 학교 아이들 대부분도 양철 지붕의 한 평 남짓한 쪽방에서 5~7명의 식구들과 산다. 김선 교장은 "학교 급식이 없으면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고 했다.
굿네이버스가 8년 전부터 이 학교를 지원해왔다. 국내 초·중·고 학생들이 벌이는 '사랑의 동전 모으기' 성금으로 교사 월급과 운영비, 아이들 급식비를 지원한다. 수도에서 3시간 거리인 가타일 학교와 밀뿔 지역의 아동구호센터, 굴산지역 구호센터도 운영한다. 사랑의 동전 모으기에 적극 참여한 학교장·교사·학생과 한국암웨이 직원 등 19명은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나눔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했다.
학생대표로 방글라데시를 방문한 인천심곡초등학교 홍지은(12)양은 "이렇게 힘들게 사는 친구들이 있는 걸 보고 그동안 부모님께 투정한 것에 대해 많이 반성했다"고 했고, 서울중앙여고 오미현(17)양은 "외국 친구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한국인 교사들과 자원봉사자들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밧다라 학교 후세인(11) 학생은 "한국 친구들의 성금으로 우리가 공부한다는 걸 알고 있다"며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나도 다른 나라의 어려운 친구들을 돕겠다"고 했다. 수도에서 차로 3시간 떨어진 가타일 학교에서 만난 니마(12)는 활짝 웃으며 한국 친구들에게 보낼 그림 편지를 보여줬다. 방글라데시 국기 그림 옆에는 서투른 글씨로 '사랑해요'라는 한글이 적혀 있었다.
박성웅 주방글라데시 대사는 "한국 구호단체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크게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랑의 동전 모으기
'사랑의 동전 모으기'는 국내 결식아동과 북한 어린이, 제3세계 빈곤 아동을 돕기 위해 우리이웃네트워크 참가단체인 굿네이버스가 93년부터 시작했다. 올해는 전국 2000여개 학교가 지난 3월부터 4개월간 14억원을 모았다. 사랑의 동전 모으기에 참여한 홍영모 을지초등학교장은 "우리도 6·25 전쟁 직후 많은 나라의 도움을 받고 오늘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며 "이제 우리도 제3세계 어린이들 돕기에 적극 나설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