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고사리쉼터’는 최근 문을 닫았다. 전기료·인터넷 사용료 등의 기본 운영비조차 감당할 수 없어서다. 2003년 ‘매미’로 수해를 입은 후 허리까지 밀어닥쳤던 진흙을 걷어내고 도배를 새로 해 만들어졌던 공부방. 탄광으로 생계를 꾸리는 이 지역 아이들 120여명의 유일한 도서관이자 놀이터가 사라진 셈이다. 규모 15평의 아담한 공부방은 정부의 ‘18평 이상’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운영비 지원을 못 받았다. 공부방을 운영해 온 김주철(44) 목사는 “산골 아이들이 갈 수 있는 학원이 어디있으며 읽을 책이 어딨겠어요. 도시 아이들과 경쟁하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방에서 책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부가 빈곤 아동에 대한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아동센터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지 1년. 지역아동센터로 지정되면 월 200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한다고 정부는 생색을 내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오랫동안 빈민 지역에서 봉사해 온 공부방들이 하나, 둘 문을 닫는 위기에 처하고 있다. 까다로운 시설 기준과 지방자치단체의 무관심 때문이다.
아동 40여명이 매일 찾는 경남의 한 공부방 역시 '18평 이상'의 시설 기준을 맞추지 못해 운영비 지원이 끊겼다. 건물 일부가 무허가라는 이유 때문이다. 해당 지역의 공무원은 "지침이 그렇다. 시설 기준을 못 맞추면 운영비 지원을 할 수가 없으니, 새 장소로 이전하면 될 것 아니냐"며 냉정하게 대답했다.
전국지역아동센터공부방연합회(전지공협) 소정열 사무국장은 "가장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찾아가다 보면 주택 밀집지역, 공장 인근, 농·어촌 등에 공부방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정부는 까다로운 입지·시설 기준만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운영되는 대부분의 공부방들은 교회 내 공간이나 상가, 연립주택, 공공건물 등의 시설을 임대해 이용하고 있다. 재정이 열악해 매달 운영비도 기업이나 개인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운영한다. 따라서 정부의 기준을 맞추려면 현재 운영되는 공부방 중 3분의 1 이상이 새 지역으로 옮기거나 새 장소를 찾아야 한다.〈표 참조〉 공부방 지원사업을 펼치는 사회연대은행 조정은 과장은 "운영비도 없어 쩔쩔매는 공부방 운영자들에게 정부가 제시하는 시설기준에 맞춰 새 공간을 마련한 후 지역아동센터로 등록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시설 기준'에만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오랫동안 일해왔던 공부방 대신 이윤 추구를 위해 지어진 어린이집들이 대거 지역아동센터로 전환, 운영비를 지원받는 경우도 늘고 있다.
불완전한 제도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아이들이다. 해송아동연구소 박인선 소장은 "지금까지 사재를 털어가며 아이들을 위해 버텨왔던 공부방들이 무너지면 정부 지원의 사각 지대에 놓인 빈곤 아동들은 갈 곳이 없다"고 우려했다. 본지가 서울·수도권 공부방 아이들 400명을 조사한 결과, 아이들 10명 중 8명이 월수입 150만원 이하의 가정에서 살고 있었다. 또 한부모 가정이나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어, 혼자 식사를 챙겨먹어야 하는 경우가 10명 중 7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들 중 정부의 급식 지원을 받는 아이는 10명 중 3명에 불과했다. 공부방이 사라지고 나면 정부 지원의 사각 지대에 놓인 아이들은 제때 밥조차 먹지 못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