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은 29일 검찰이 '안기부' 미림팀장이었던 공운영(58)씨 집에서 도청테이프 274개를 압수하자 간부회의를 소집,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국정원의 '치부'가 한꺼번에 드러날 수 있는 대형 악재라는 점에서 국정원 간부들은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도청테이프가 1개도 아니고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으니, 국정원에 대한 여론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국정원 간부들은 "검찰이 도청테이프를 압수, 결국 검찰 수사의 칼날이 국정원을 향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면서도 "도청테이프 처리는 공조가 불가피하다"고 못박았다. 검찰이 압수한 테이프가 1999년에 소각한 도청테이프의 복제본인지, 아니면 별도의 것인지를 확인하려면 국정원과 검찰이 협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간부들은 "1999년 회수 당시, 압수수색을 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나오자 곤혹스러워하기도 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지금의 상황논리로 보면 안 된다"면서 "당시는 공씨의 진술을 믿고, 자발적으로 반납받는 것이었기 때문에 압수수색하기는 곤란했다"고 해명했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도청테이프에서 검찰간부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마당이니, 검찰이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검찰이 국정원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럴 바에는 아예 특검에 맡겨 철저히 파헤치고 가는 게 낫다"고 '특검수사론'을 펼치기도 했다.
국정원 내부에선 "참여정부 들어 그러잖아도 국정원의 힘이 빠졌는데, 이번 사건으로 정보기관의 위상이 상당부분 실추될 것 같다"는 얘기들도 나왔다. 모 지부 근무자인 K씨는 "집에 돌아가 가족들 볼 낯이 없게 됐다"면서 "이처럼 참담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 내부에선 "이건모 전 감찰실장이 도청테이프 내용에 대해 '상상을 초월하는 핵폭탄이었다'고 말한 지 불과 하루도 안 돼 도청 테이프 274개가 발견돼 오히려 사태를 증폭시킨 측면이 있다"고 당혹스러워하기도 했다.
입력 2005.07.30.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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