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검찰에 구속된 재미교포 박인회(58·윌리엄 박)씨는 1997년 대선 당시 삼성그룹과 대선후보 간의 돈 거래 정황이 담긴 도청테이프로 삼성 측에 5억원을 요구했으며,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도 녹취록을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공개된 박씨의 구속영장에 따르면, 박씨는 1999년 9월 하순 서울 중구 태평로 이학수(李鶴洙)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사무실을 찾아갔다. 당시 박씨의 손에는 안기부 퇴직직원 임모(58)씨를 통해 알게 된 비밀도청조직 '미림'의 공운영(58) 전 팀장으로부터 받은 도청테이프 녹취록이 쥐어져 있었다. 박씨는 "녹취록뿐 아니라 실제 음성이 담긴 테이프가 있다. 테이프를 줄테니 5억원을 달라"고 이 본부장에게 요구했다. 박씨는 또 "돈을 주지 않으면 언론 등에 공개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 본부장은 박씨의 요구를 거부하고 국가정보원에 이 사실을 신고했다고 한다.

같은 날 박씨는 미국에 있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박지원 전 장관 사무실에도 찾아갔다. 박씨는 당시 중앙일보로부터 계속 비판을 받아오던 박 전 장관에게 녹취록을 주면서 안기부에서 퇴직된 임씨의 복직을 부탁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12월 30일에는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자신의 부친 집 인근에서 MBC 이모 기자에게 도청테이프를 전달했다.

검찰 조사결과 박씨는 폐기물 처리업체를 운영하면서 사업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안기부 퇴직 직원인 임모씨를 통해 역시 퇴직 후 경제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던 공씨를 소개받아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박씨가 삼성그룹으로부터 돈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보도 기관에 도청 테이프를 전달했으며, 최근 도청 파문이 커지자 미국으로 출국하려 했다"고 구속 사유를 밝혔다. 하지만 박씨는 이날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이 본부장에게 형편이 어렵다는 말은 했지만 돈을 요구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