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비밀 도청 조직 '미림'의 팀장이었던 공운영씨는 26일 자해하기 직전 13쪽의 자술서를 통해 미림의 활동 경위와 'X파일'로 불리는 도청 테이프 유출 경위를 비교적 상세히 밝혔다.

◆미림팀 어떻게 운영됐나

공씨는 92년 미림팀장으로 임명되면서 '미림업무를 과학화시키라'는 지시를 받고 미림팀원들을 직접 선발해 훈련시켜 본격 도청업무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의 이런 발언은 미림팀이 92년 이전에도 활동했으며, 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활동이 더욱 활성화됐다는 것을 뜻한다. 92년 당시 안기부장은 서동권·이상연·이현우씨였고, 제1차장은 김영수·성용욱·손진곤씨였다. 그는 미림팀장을 맡기 전 대공정책실 정보관으로 근무했다고 밝혔는데, 도청에 관한 한 '달인'이었음을 암시했다.

공씨는 YS가 당선된 후 미림팀의 활동이 중지되고 팀원들이 무보직 상태로 방치됐다고 말했다. 미림팀이 재가동된 것은 YS정권 출범 이듬해인 94년이다. 대선 때 부산 초원복집 도청 사건으로 도청은 절대 않겠다던 YS정부가 다시 미림을 되살려 낸 것이다. 당시 안기부장은 김덕·권영해씨였고, 제1차장은 황창평·정형근씨였다. 공씨는 92년과 94년 미림팀을 가동시키도록 지시한 상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공씨는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언젠가는 또다시 도태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서 중요 내용은 은밀 보관하기로 작심 끝에 일부 중요 내용을 밀반출, 임의 보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3년여 활동하다 DJ정권으로 바뀌면서 직권면직된 공씨는 "조직에 대해 심한 배신감마저 갖게 됐다"고 했다.

◆도청 테이프를 둘러싼 숨바꼭질

안기부의 불법 도청 테이프가 시중에 유출된 과정은 첩보영화를 방불케 한다. 공씨는 면직된 후 함께 안기부를 떠난 동료 A에게서 재미교포 윌리엄 박을 소개받았다. A는 공씨에게 "윌리엄 박은 삼성그룹 핵심인사는 물론이고 박지원 당시 문공장관 등과도 돈독한 관계"라고 소개했다. 공씨의 문건으로 삼성측의 사업 협조를 얻어낼 수 있고 A도 복직할 수 있으며, 공씨의 시외전화 유치사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공씨는 "삼성그룹 자체 약점이 될 수 있는 사안만을 제시할 경우 공개될 수도 없을 것 같은 단순한 판단을 내린 끝에 박씨에게 테이프를 전달했다"고 했다.

하지만 공씨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는 않았다. 삼성과 박씨와의 '협상'은 잘 진행되지 않았고, 공씨는 박씨에게서 문제의 테이프를 되돌려 받았다. 테이프를 되돌려 받은 몇 달 뒤 공씨에게 국정원 요원들이 찾아 왔다. 공씨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감찰실 요원에게 가지고 있는 테이프 200여개를 반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테이프 복사본은 박씨에게 남아 있었다. 반납 몇 달 뒤 국정원 요원은 다시 공씨를 찾아 박씨가 또 삼성측을 협박하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해서라도 해결할 수 없느냐고 말했다. 공씨는 박씨를 만나 "없었던 일로 하고 그만 미국에 돌아가라"고 설득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테이프의 악몽은 또 공씨를 찾아왔다. 박씨의 아들이 A를 찾아와 협박하고 있다는 말을 A로부터 전해 들었다. 공씨는 "최근 (불법 도청 테이프) 문제가 일파만파 발전되는 것을 보고 박(이 벌인 일)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세상은 혼돈의 연속이었다"

공씨는 "업무 수행상 남들이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충격과 함께 세상만사가 이렇게 되어가고 또 이렇게 해서 살아가는구나 하는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사회는 서로 간 이해 대립에 따라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아첨, 중상모략, 질투, 이루 말할 수 없을 혼돈의 연속이었다"면서 "물론 그 중에서는 양심적이고 정도를 걷는 분들도 보았다"고 말했다.

공씨는 "지난 97년 대선 당시 DJ가 당선되면 저 자신에게 또다시 엄청난 불이익이 예상되기 때문에 은밀히 선을 대 (이회창 후보를) 지원한 사실이 있음을 솔직히 시인한다"고 밝혔다. 공씨는 "지난 대선 당시에도 역시 순수 민간 차원에서 (이 후보를) 지원한 바 있음을 솔직히 시인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