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지옥이 따로 없어요. 구호작업을 위해 물이 종아리까지 차오른 길을 걷다 보면 발 밑에 동물시체가 물컹 걸리고, 개들이 어슬렁거리다 시체를 물어뜯고…. 아비규환 그 자체였습니다.”
지난달 29일 서울을 출발, 스리랑카 동부 바티칼로아와 암파라 현지에서 구호활동을 편 뒤 3일 밤 귀국한 한비야(45·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씨는 "이번처럼 참혹한 현장은 처음"이라고 했다. 오지 탐험가로 '바람의 딸'이라는 책을 펴냈던 그는 4년 전 난민 구호활동가로 변신한 뒤 이번처럼 끔직한 재앙은 처음 본다는 것이었다.
허름한 오두막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건물이 있던 자리는 불도저가 휩쓸고 간 것처럼 황량한 벌판만 남아 있었다고 했다. "난민촌에서 만난 한 40대 남자는 아이들 넷을 껴안고 나오다 놓쳐서 혼자 살아났다고 합니다. 아이들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통곡하다 결국 쓰러졌어요." 그는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사람들이 평생 안고 갈 마음의 짐을 생각하면 이번 재앙의 후유증은 몇십년 갈 것"이라고 했다.
현재 스리랑카 정부가 발표한 '공식' 사망자 수는 3만여명. 스리랑카 전역에 마련된 이재민촌은 799개에 이른다. 이 중 동부 암파라에서만 1만여명, 바티칼로아에서는 2200여명이 숨졌다. 난민 숫자도 스리랑카 전체 80만명 가운데 9만명 정도가 이 두 지역에서 발생했다.
한씨는 현지에서 가장 절박하게 원하고 있는 것으로 의료품 지원을 꼽았다. 식수원이 다 오염돼 설사와 구토 증세를 보이고 있는 아이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기(雨期)인 데다 난민촌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 콜레라 등이 번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지금 당장 이재민촌에 의료 지원을 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런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깨끗한 물과 화장실, 임시 거처, 간단한 의약품, 심리치료'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씨는 "재난 구호는 처음 한 달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초기에 의료품 지원과 복구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회복하기가 힘들다"며 "우리도 6·25때 도움을 받은 나라인데, 그들이 절망 속에서도 삶을 계속할 수 있도록 부디 도와 달라"고 말했다.
한씨는 대재앙이 발생한 후부터 지금까지 누워서 잔 시간이 10시간도 채 안됐다고 했다. 그는 5일 또다시 인도네시아의 최대 피해지역인 반다아체로 떠난다. 그는 "그들도 우리 이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