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편 후 5년째를 맞게 된 제35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결정 회의는 경북 안동에서 있었다. 올해엔 특히 몇 가지 복잡한 사정들이 겹쳐 있었다. 우선 개편 후 여성 작가에게 수상이 돌아가지 않았다. 현재 한국의 소설계에서 여성 작가들의 비율이 압도적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 현상은 심사에 정신적인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한 작품의 작가는 올해 굵직한 문학상을 벌써 둘이나 수상한 상태였다. 그러나 동인문학상의 원칙은 작품 외적인 요인들은 일절 배제한다는 것이었다. 원칙과 현실 사이의 미묘한 길항 관계는 은근히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지난 1일 경북 안동에 있는 한 한식집. 왼쪽부터 이문열 정과리 유종호 김주영 박완서 김화영 이청준 심사위원. (이진한기자 magnum91@chosun.com)

1차 투표의 결과 ‘달의 제단’(심윤경)이 6표, ‘검은 꽃’(김영하)이 5표, ‘비밀’(서하진)이 3표를 획득했다. 유려한 문체와 막힘없이 풀어내는 화술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던 ‘아름다운 지옥’과 견고한 구성과 삶의 허무함에 대한 깊은 암시로 주목을 받았던 ‘비밀’은 아쉽지만 이제 논의 대상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마지막 투표 대상에 오른 두 작품은 올해의 한국문학에 강렬한 충격을 주었던 것들이었다. 어느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선 여인 수난사를 압축적으로 묘파”한 ‘달의 제단’은 그동안 정신적인 금기 대상에 속했던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들어간 신진 작가의 과감한 패기가 돋보였고 고문과 현대문의 절묘한 대위법을 통해 문학적 긴장을 최대한도로 높였다는 점에서 강력한 지지자들의 성원을 입고 있었다. 반면 ‘검은 꽃’은 한국사에서 방치되어 있었던 한국인의 가장 슬픈 과거 하나를 소재로 하여 가혹한 운명에서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쳤던 사람들의 모습을 핍진하게 형상화함으로써 역사에 저항하는 다른 시간 줄기를 창조해낸 작품이었다.

치열한 토론 끝에 7인 심사위원이 최종 투표를 했다. ‘검은꽃’이 4표(위쪽), ‘달의 제단’이 3표를 얻었다.



어느 작품이 수상작으로 결정되는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투표가 끝나고 한 표 한 표가 개표될 때마다 탄성이 일었다. 결과는 '달의 제단'이 3표, '검은 꽃'이 4표. 말 그대로 종이 한 장의 차이였으나 그것이 또한 수상과 탈락을 결정지은 것이었다.

투표가 끝난 후 심사위원들은 짧지만 깊은 침묵에 사로잡혔다.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들이 다시 상기된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동수상의 제안까지 있었으나 예외는 가능한 한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는 원칙주의가 그 말을 막았다. 아무튼 이제 결정은 불가역적인 것이 되었다. 한 심사위원이 동인문학상은 작가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주는 것이라는 애초의 의도를 일깨웠다.

심사위원회(박완서 유종호 이청준 김주영 김화영 이문열 정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