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의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는 ‘진행성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는 남경이가 엄마(오른쪽)가 지켜보는 가운데 보건소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구미=이재우기자 jw-lee@chosun.com

열두살 최남경(구미 고아초등학교 6학년)군의 소원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친구들처럼 축구하는 것. 다른 하나는 책가방을 메고 제 발로 걸어서 교문을 통과하는 것이다. 또래들에겐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남경이에게는 간절한 소원이다.

남경이는 6년째 ‘진행성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다리에서 시작해 온 몸의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는 희귀병이다. 마비가 심장과 폐근육까지 진전되고 합병증이 오면 스무살 이전에 사망하게 된다. 그렇지만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 관절이 뒤틀리지 않도록 일주일에 세 번씩 집 근처 보건소에서 물리치료를 받는 게 전부다.

“우리 아이가 ‘진행성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사형선고를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아 눈물도 안 났어요.”

엄마는 남경이 병을 알고 난 후부터 종일 아이와 함께하고 있다. 아침마다 책가방을 대신 둘러메고 교실까지 휠체어를 밀고,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데려온다. 밤에도 깊이 잠들 수 없다. 남경이가 “엄마…”를 부를 때마다 몸이 배기지 않도록 뒤집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햇살 좋은 날은 더 서러워요. 집 앞에서 뛰어노는 다른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더 아프고….” 마땅한 약도 없고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엄마는 그저 모든 게 미안하다고 했다.

서울에서 군 복무 중인 최민종(가명·20)씨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수술이나 외상이 발단이 되는 이 병은 한 부위에서 통증이 시작돼 전신으로 퍼지는 병으로, 아직까지 뚜렷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최씨는 입대 직전인 작년 초 다리가 아파 여러 차례 병원을 찾았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그 와중에 영장이 나왔고 결국 가을에 입대했다. 그렇지만 훈련 중에도 통증은 멈추질 않았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다리에서 시작돼 전신으로 퍼집니다. 통증이 시작되면 온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까무러친 적도 있어요.”

최씨는 “하루에 적게는 3~4번, 많게는 10번까지 통증이 온다”고 했다. 1~2분 만에 끝날 때도 있지만, 긴 통증은 30분 이상 지속될 때가 많다. 10시간 이상 통증을 견뎌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휴가 중 병원을 다시 찾은 최씨는 뜻밖에도 병원에서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군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진단서도 함께 나왔다. 하지만 최씨는 의가사전역을 할 수 없었다. 군의관들은 “규정상 인정할 수 없는 병”이라는 원칙만 내세우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최씨는 통증이 발병하면 군병원에 갔다가 나아지면 다시 복귀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하루에 세 번씩 먹어야 하는 약은 부모님이 면회올 때마다 사오신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우회 이용우 회장은 “미국에서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을 장애로 인정하고 한 달에 2000달러씩 장애연금도 준다”며 “최씨의 경우 부대에서 치료하기 힘들면 외부 병원에라도 의탁해서 전문가에게 치료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발병 원인도 치료 방법도 분명하지 않은 질병을 묶어 ‘희귀·난치성 질환’이라고 부른다. 현재 복지부가 추정하는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는 환자들은 국내에 무려 50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병의 종류가 110여종에 달할 정도로 개별 병을 앓는 환자 숫자는 많지 않아,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환자와 가족들만 속앓이를 하고 있다.

희귀·난치병 환자와 그 가족들의 가장 큰 바람은 병의 조기 진단이다. 초기에 발견만 해도 치료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내에서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통계가 부족해 제대로 된 진단을 받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은 더 악화되고 합병증까지 유발된다. 희귀·난치성질환 연합회 신현민(51) 회장은 “현행 기준으로는 대부분의 치료약이 의료보험 적용이 안 돼, 가족 중 한 명이 병에 걸리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