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를 전공한 박상순 시인은“회화보다 시가 내면의 목소리를 더 강하게 외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가을의 한순간

텅 빈 버스가 굴러왔다

새가 내렸다

고양이가 내렸다

오토바이를 탄 피자 배달원이 내렸고

15톤 트럭이 흙먼지를 날리며

버스에서 내렸다

텅 빈 버스가 내 손바닥 안으로 굴러왔다

나도 내렸다

울고 있던 내 돌들도 모두 내렸다

(부분)

실험적 전위시로 일관해온 박상순(43) 시인이 세 번째 시집 ‘Love Adagio’(민음사)를 냈다. 시인 최승호는 “개인적 암호를 즐기는 고독한 취향”이라고 평했다. 시인 김춘수는 그를 “가장 눈여겨보는 후배 시인”이라고 했다.

―당신의 시는 이른바 ‘규정의 울타리’에 갇히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왜 그런 일이 시작됐는가?

“설명, 규정, 정의 같은 것들이 삶에 있어 최선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갈등 속으로 밀어넣는 경향이 있다.”

―규정당하는 것을 거부하는 시인일수록 매우 강력한 시 이론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서로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시인은 냉혹하고 철저한 원칙에 순응하거나 대결하고자 한다. 저는 소재와 내용이 제 시 속에서 이래도 저래도 좋은 게 아니라 하나의 스타일을 냉정하게 적용하고 있다. 열려 있지 않은 태도로 저 자신을 대하는 것도 사실이다. 예술이란 이율배반 속에서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킨다.”

―박 시인은 독자에게 그 모습이 붙잡히지는 않지만 동선(動線)을 느낄 수는 있다. 무력감에 휩싸일 위험도 있는데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말할 때보다 ‘어떻게’를 말할 때가 예술적으로 더 소중하다. 그 문제는 대단히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무력감에 빠지는 일은 없다.”

―어떤 평자는 이번 시집에서 서정적인 고통, 낮은 목소리의 비명을 읽어내고 있다. 시적 전략인가?

“냉정함이 시 속에 들어 있으나 나 또한 슬픔을 겪는 고독한 존재다.”

―의미를 벗어 던지는 시가 때로는 더 직접적으로 세계 질서에 내재된 폭력성을 고발한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참여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가?

“획책된 의미에 동원되기를 거부할 때 현실 의식과 저항을 강하게 느낀다. 그러나 무의미를 지향하지는 않고, 다만 형식적으로 열려 있는 공간을 연출할 뿐이다.”

―서양화를 전공했다는 이력이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영향의 전후 관계는 없다. 일상적이며 흔들리는 국지적 방언인 시어를 선택한 것은 이것이 훨씬 더 내면의 목소리를 강하게 외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문학의 절정기라고 보는 사람도 많다. 현장에서 무슨 요인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시는 (소설에 비해) 문화상품으로서 가치가 낮기 때문에 향유(享有) 기능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다만 어떤 시가 시대 양식과 정신을 만드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김광일기자

(김광일 ki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