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호기자·이항수기자(사진 왼쪽부터)

지난 7월 22일 오전 서울 가리봉1동 ‘공단 5거리’의 한 건물 앞. 30도가 넘는 찜통 더위 속에 김창국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오영석 한신대 총장, 이인영 열린우리당 의원, 청와대의 황인성 시민사회 비서관, 박노해 시인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등이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었습니다.

얼핏 봐선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의 조합.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음악 연주가 울려 퍼지고, 만국기가 걸린 가운데 이날 열린 행사는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 개원식이었습니다. 국내 50여만명 외국인 노동자를 치료하기 위한 첫 의료기관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날 행사에서 모두 16명에 대한 감사패 전달이 있었는데, 조선일보 인사가 3명 있었습니다. 방상훈 사장과 최순호 사진부 기자와 이항수 사회부 기자. 이 병원 설립에 조선일보가 ‘우리이웃’ 시리즈 보도를 통해 도왔기에 방 사장이 대표로 받는 것은 알겠는데, 다른 두 기자는 어떤 사연으로 이 패를 받게 됐을까요?

이제부터 후배 기자 두 사람에 대한 ‘즐거운 자랑’을 한번 해보렵니다. ‘외국인 노동자의 집’ 김해성 목사는 이날 이렇게 말했죠.

“최순호 기자는 외국인노동자 의원 설립의 동지다. 사진기사 설명에 ‘나도 울었다’고 쓴 사람은 처음 봤다.”

“이항수 기자는 외국인 병원 취재중 마침 상금으로 지녔던 적지 않은 돈을 병원 설립에 쾌척했다. 이런 기자는 처음 본다.”

7월22일 오전 땡볕속 가리봉동 공단 5거리의 대로변에서 '외국인 전용 노동자 전용의원' 개원식이 열렸다. <br> <a href=mailto:wjjoo@chosun.com><font color=#000000>/ 주완중기자</font><

최순호 기자는 ‘우리이웃’ 취재팀으로 일하던 지난 3월 서울 구로동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김해성 목사와 마주앉았습니다. 영하 추위 속에서 쓰러져 3시간10분 동안 119와 112에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으나, 도움을 받지 못해 숨진 한 외국인 노동자를 취재하던 중이었습니다.

이 자리서 김 목사는 7년 동안 간직한 자신의 꿈이 있다며 병원설립 계획서를 내놓았습니다. 감기가 원인이 되어서 죽은 외국인 노동자, 단돈 50만원이 없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들, 산업재해로 죽은 수백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시신을 처리해서 고국으로 보내는 일을 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던 김 목사 눈에 물기가 고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의 모습에 최 기자는 감동받았고,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당시 ‘우리이웃’ 팀장이던 제게 와 “진 선배, 외국인노동자 병원은 우리이웃팀에서 책임지고 만들도록 해야합니다”라고 반강제적으로 이야기하더군요.

이 프로젝트는 당시 ‘우리이웃’팀에서 의료지원 부문을 취재했던 이항수 기자(현 법조팀장)에게 맡겨졌습니다. 이 기자는 취재 전날 ‘우리이웃’팀 보도 공로로 서울시 의사회로부터 ‘금십자상’을 받았습니다.

이 기자는 외국인노동자의 현실을 목격하고는 눈물이 나와 당시 가지고 있던 상금 200만원 전액을 김해성 목사에게 주고 왔습니다.

'우리이웃’ 지면에 치료받지 못해 목숨 잃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슬픈 사연이 보도된 후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조선일보 독자 207명이 6500여만원 성금을 모았습니다. 병원·기업·단체들로부터도 다양한 지원이 이어졌습니다.

보도가 나간 직후 외국인노동자들 5명이 꽃다발 두 개를 들고 우리이웃팀을 찾아와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때 저는 정말 신문기자의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난 5년간 치료받지 못해 숨져간 외국인 노동자만 1000명을 훌쩍 넘습니다. 이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의 집’은 종종 오열과 발버둥, 통곡으로 가득찼습니다. 하지만 요즘 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에는 웃으며 치료받는 환자들이 이어집니다.

김해성 목사는 “연간 12만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병원의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며 “조선일보에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외국인노동자 의원에는 개원식을 보도한 본지 기사가 동판(銅版)으로 제작돼 외국인 노동자들을 맞고 있습니다.

(진성호·편집국 미디어팀장 shji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