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54주년을 맞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이 전쟁은 잊혀 가고 있겠지만 필자에게는 아직도 과거가 아니다. 서울 청량리에서 사업을 하면서 가족들과 잘 살아가는 성실한 가장이었던 필자의 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무고하게 북한군에 납치돼 갔고 지금까지 행방을 모르고 있다.
전쟁은 전쟁을 결정하는 정치가의 입장, 집행하는 군인의 입장, 피해를 당하는 피해 민간인의 입장이 다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고전적인 전쟁론이 말하듯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고 말하고 마는 것은 전쟁의 흉포한 현장에서 한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호사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명분이 어찌 되었든 무고하게 당한 피해자에게는 그저 날것 그대로의 아픔과 고통이 있을 따름이다. 외아들을 잃은 고 김선일씨 부모의 절규가 그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전쟁은 언제나 결정자나 집행자의 입장에서만 부각되고 만다. 역사도 그들을 중심으로 기록되고 해석된다. 그에 반해 피해자들은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채 이름도 명예도 없이 잊혀가고 만다.
이제 6·25전쟁을 일으켰던 사람들은 거의 세상을 뜨고 없다. 누가 이 전쟁에 책임이 있느냐를 따지는 것도 현실감이 떨어지는 일이 돼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쯤 무고한 민간인들에 주목할 차례가 아닌가 한다.
적(敵)이 누구고 아(我)가 누구인지를 따지기보다, 누가 명분을 쥐고 있는지를 따지기보다, 이제는 복권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민간인 피해자들의 인권에 눈을 돌려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 6·25 납북인사가족들에게 이 전쟁은 생생한 현재다. 우리는 아직도 애타게 가족들의 행방과 흔적을 찾고자 애쓰고 있다. 피랍자 공식 명부를 찾기 위해 고서점을 뒤지고 도서관의 후미진 문서보관고를 찾아다녔다. 그 결과 6·25당시 기록된 납북자명단, 대한적십자사가 기록한 명단 등을 찾아내기도 했다.
지난 2002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6·25때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 것은 우리 가족들의 이런 노력의 자그마한 결실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나마도 그때뿐 다시 우리 가족들의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10여명의 납북자들을 찾아오기 위해 전 열도가 들썩이고 그들을 직접 데려오기 위해 총리가 두 번씩이나 북한땅을 밟은 일본을 우리 가족들이 얼마나 부러운 눈으로 볼지는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서 피랍자 인권문제이든 행방불명자 생사를 확인하는 문제든 더 이상의 진전이 없는 까닭이 꼭 북한에만 있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대한민국은 진정 국민에게 무엇인가, 이런 원론적 질문을 뱉어놓고 한숨지을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정부가 정말 우리들 무고한 민간인에게 든든한 ‘빽’이 못 돼 주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고 김선일씨의 죽음은 다시 한 번 “그를 위해 조국은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놓았다. 우리 6·25전쟁 납치피해자 가족들은 54년째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현 정부가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싸운 6·25전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4·19나 5·18광주민주화운동 이상으로 대한민국의 존재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그 전쟁에 대해 그저 역사 속에 묻혀가기를 바라지는 않기를 염원한다.
(이미일·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명예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