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백혈병을 앓고 있는 정수에게 헌혈을 해준 주한미군 브라이트(왼쪽) 상병이 병원으로 정수를 찾아와 정수 가족과 함께 웃고 있다. <a href=mailto:jw-lee@chosun.com><font color=#000000>/ 이재우기자</font><

지난 7일 오후 3시 대구 동산의료원 소아병동.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입원해 있는 정수(가명·8)에게 파란 눈에 베레모를 쓴 미군 병사 한 명이 찾아왔다. 병원 지리에 익숙한 듯, 병사는 건물 2층에 있는 혈액실 안으로 성큼 들어가 창문 쪽 침대에 누웠다. 이윽고 담당의사가 몇 가지 혈액 검사를 한 뒤 백혈구를 증강시키는 주사제를 투입했고 1시간 뒤 병사는 양팔에 주사기를 꽂고 2시간에 걸쳐 백혈구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오늘이 정수에게 하는 4번째 수혈이에요. 제 백혈구는 3일 뒤면 다시 살아나니깐, 괜찮아요. 꼬마가 건강해지는 데 필요하다면 계속 여기 올 생각이에요.”

병사 이름은 브루스 브라이트(Bruce Bright·25) 상병. 인근 군부대 캠프워커 소속인 그는 RH음성(-) 혈액을 가진 정수가 3차 항암치료를 받는 데 필요한 혈액을 제공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오후 늦게 수혈을 마친 브라이트 상병은 정수가 머물고 있는 병실 문을 두드렸다.

잔뜩 짜증을 부리며 엄마를 괴롭히고 있던 정수는 1m90 큰 키의 브라이트 상병이 방 안으로 성큼 들어서자 그를 향해 “또 왔다!”며 까르르 웃었다. 브라이트 상병이 큰 손으로 악수를 청하자 정수는 “생큐베리머치”(고마워)라고 말했고 브라이트 상병은 “유어웰컴”(천만에)이라고 답인사를 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희귀한 혈액형을 갖고 있어 항암치료 때마다 수혈용 혈액이 부족해 발을 동동 구르는 정수를 위해 브라이트 상병뿐 아니라 인근 주한 미군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지난 3월부터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 정수의 RH음성 혈액형은 한국 사람 중 0.1%만 가지고 있다는 희귀 혈액형. 3차 항암 치료를 앞두고 있던 소년의 가족들은 최근 적십자사 RH음성봉사회협의회와 인근 한국 목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들이 다시 미군 부대에 연락을 취했다. 미국인들 중에는 RH음성 혈액을 가진 사람이 20% 정도로 비교적 많다.

지난 1일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캠프캐롤 소속 닉 와이송(Nick Wysong·19) 일병과 제러미 러니치(Jeremy Runich·27) 병장도 이 공고를 보고 정수를 위해 수혈을 하러 왔었다.

정수의 어머니(38)는 “항암 치료를 한 번 받을 때마다 5명 정도가 정수에게 수혈해야 하는데 늘 혈액이 모자라 조마조마했다”며 “많은 미군들과 한국분들이 도와주고 있어 고맙다”며 울먹였다. 정수는 현재까지 모두 20번 수혈을 받았고 이 중 6번은 미군으로부터 받은 혈액이다. 병원 관계자는 “지금도 ‘정수에게 수혈하길 원하는 미군이 있으니 병원으로 보내겠다’는 전화가 계속해서 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