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전화 속의 목소리는 법조팀장인 이항수 기자. 그러나 그의 입에서 다급하게 나온 말은 검찰이나 재판과는 전혀 무관한 토픽이었습니다.

“선배! 막연히 슬퍼하고만 있으면 안되죠. ‘우리이웃’이 이제 북한으로 달려가야합니다.”

‘용천’과 ‘우리이웃’의 만남…. 그의 말처럼 ‘우리이웃’은 북한 용천으로 달려갔습니다, 사랑을 싣고서 말입니다.

북으로 가는‘우리이웃’. 우리이웃네트워크 참여단체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단장 조현삼 목사)이 지난 4월 말 북한 용천 사고현장의 이재민들에게 보낼 콩 15t을 중국 단둥화물보세구역에서 옮기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구호물품을 북으로 보내려는 봉사단원들의 표정이 밝다.

이항수 기자는 조선일보 새해 1월 1일자부터 보도된 ‘우리이웃’ 기획시리즈를 저와 함께 취재한 팀 동료였습니다. ‘우리 이웃’은, 지면을 통해 잘 아시겠지만, 소외된 어려운 이웃의 삶을 돌아보자는 취지의 기획입니다.

기사로만 그치지 않고 실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회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봉사단체·기업체를 중심으로 ‘우리이웃네트워크’가 지난 2월 결성됐습니다. 우리이웃네트워크는 50억원 규모의 공부방 사업을 비롯해 지하방에 환풍기 보급, 자활을 위한 나눔은행 운영, 무의촌 의료지원, 독거노인·청소년 결연사업등을 벌여오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출근했더니 ‘우리이웃’ 시리즈 에디터인 김종래 부국장은 특유의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우리이웃 네트워크를 가동할 때가 왔다”고 편집국이 떠나갈 듯 소리치더군요.

우리이웃네트워크 참여단체인 인터내셔널에이드코리아(IAK)는 화상 치료제인 실바덴크림과 항생제 등 100억원대의 의약품을 보냈습니다. 이 단체 김치운 대표(계명대 교수)는 “어려운 사람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가서 도와야 하는 것이 구호단체들의 책무”라며 “우리이웃 네트워크의 활동을 북한에서도 이어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이웃네트워크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참여단체인 월드비전, 대한적십자사,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새마을운동중앙회, 자유총연맹 등 덩치가 큰 단체들이 앞다퉈 북한 용천 주민돕기에 나섰습니다.

특히 우리이웃네트워크의 대한의사협회와 약사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간호사협회는 ‘범보건의료계 용천의료지원단’을 구성해 100만달러 상당의 의료장비를 북에 지원하고 공동모급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중국 단둥에서 ‘우리이웃’ 로고가 선명한 구호물품을 실은 트럭이 북한으로 떠나는 사진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개인의 작은 성금도 이어졌습니다. 서울시가 지난 7일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계천 노래 공모’에서 가곡 부문 우수상을 받은 부부 교사 박수진(50)·김애경(여·44)씨는 상금 500만원을 우리이웃 네트워크에 기부하며, “북한의 용천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해 써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이웃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조선일보사는 1억원을 용천 주민 돕기 성금으로 냈습니다. 그리고 5월 31일까지 조선일보를 통해 모두 8억 6635만여원의 독자 성금이 접수됐습니다. 이 돈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용천주민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물질적 도움뿐 아니라 따뜻한 마음과 정도 나누었습니다. ‘우리이웃네트워크’는 서울 도곡1동 언주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용천소학교 친구들에게 쓴 편지도 북측에 전달하려 합니다.

“참 무서웠겠다. 정작 집도 없어지고 갈 데도 없으니까 앞이 캄캄하겠지. 하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와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강건우)

“아플 때 그 고통을 참아내는 법 알려줄까? 눈을 감고 날고 있다고 생각을 해봐… 힘내! 만약 통일이 된다면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 그치?”(김경민)

“이건 우리나라에 있는 지우개야. 이걸로 네 마음에 남은 상처 지워지길 바래.”(김소연)

제가 사고 다음날 ‘북 열차참사 피해자도 우리 이웃이다’란 칼럼을 쓰자, 일부 안티세력은 “조선의 북한 보도 논조와 배치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어려움에 처한 북측 우리 이웃을 돕자는 것에 정치적 딴지를 걸 수 있습니까. 조선일보는 북한 동포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반대해온 일이 없습니다.

기자 생활 16년2개월 동안 일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이 몇번 있습니다. 다양한 이유들 때문이었죠. 그런데 올 들어 저는 기자 생활 전체 기간보다 더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맡은 ‘우리 이웃’ 시리즈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2004년 대한민국에 이런 삶을 살아가는 이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돈이 없어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 어린이, 우동이 뭔지도 모르고 자라온 결식아동, 선원 남편을 함께 잃은 주부의 고단한 삶… 어려운 이웃들의 사연을 보도하면서 눈물이 저절로 주루룩 흘러내렸습니다.

조선일보 ‘우리이웃’ 취재팀은 용천에 이어 최근 ‘배고픈 아이들’ 시리즈를 통해 결식아동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후속보도를 통해 결식아동을 돕기 위한 노력도 계속할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사랑을 실어 나르는 신문이 되겠습니다.

(진성호 미디어팀장·전 ‘우리이웃’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