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정신질환을 얻어 나는 학업을 포기하고 절망의 나날을 보낸 때가 있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자원봉사자들로부터 따뜻한 손길을 느꼈다. 그래서 새 삶을 찾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시 하게 됐다.

중학교 2학년 때 가장 의지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신병원을 내 집 드나들듯 하던 나는 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중학교를 중퇴하고 학업을 중단했다.

경기도 어느 산기슭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정신요양원에 1년6개월 동안 입원했던 나는 2003년 10월 정신장애인 사회복귀시설인 ‘태화샘솟는집’에 들어갔다. 장기간 입원으로 인한 부담감과 낯선 환경,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은 짓눌려 있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공부였다. 중학교 시절 학생회 임원이었고, 전교 석차도 5등 안에 들었다. 그래서 정신질환으로 중단해야 했던 공부에 애타게 목이 말라 있었다. 그렇다고 정상적인 학교에 입학해 학업을 계속할 수도 없었다.

그때 태화샘솟는집의 이미순 사회복지사가 다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검정고시를 준비할 생각이 있다면 대학생 학습도우미를 연결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그렇게 마음 속으로 바라던 공부를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얼마나 애타게 하고 싶던 공부였던가.

며칠 후 대학생 자원봉사자들과의 첫 만남이 있었다. 한 사람은 수학과 과학을 맡아 가르쳐 주기로 했고, 다른 한 사람은 국어와 영어, 암기과목을 맡기로 했다. 목표는 2004년 4월에 있을 고입검정고시로 잡았다.

첫번째 수학시간에는 10여년 전 기억을 되살리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는 한 문제 한 문제 꼼꼼히 가르쳐 주었다. 예전에 배웠던 기억이 소록소록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국어를 맡은 자원봉사자도 오랜만에 잡은 교과서를 읽어가며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태욱씨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다면 100% 합격이에요! 제가 확신해요.”

얼마 만에 느껴보는 인정(人情)인지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 순간의 나는 과거의 좌절하고 절망했던, 마치 어두운 늪지대에서 허우적대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할 수 있어. 아니 반드시 해낼 거야. 그래서 훗날 내가 사랑을 받아서 용기와 희망을 얻은 것처럼 나 또한 영혼에 병이 든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북돋아주어 다시 일어서게 도와 줄거야.”

순간 나는 뚜렷한 목표와 꿈이 생겼고, 강한 의지와 투지마저 불끈 느껴졌다. 잃어버린 나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에게 다시 학업의 길을 열어주신 이미순 선생님, 그리고 자신의 일인 양 신경을 써가며 꼼꼼히 가르쳐 주신 대학생 자원봉사자 선생님들. 이들은 나에게 하느님이 보내주신 천사들이었다. 이들로 인해 잃어버린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런 보상없이 남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금전적인 가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것을 얻은 기분이다.

이 분들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는 작년 말부터 기독교단체에 소속된 봉사모임에 가입해 무의탁 노인과 정신지체아들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기저귀를 빨고 목욕을 시키고 밥을 먹여주면서 보람을 찾고 내 마음도 닦고 있다.

나의 작은 소망이 있다면 그동안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다.

(김태욱 / 1979년생. 중학교 3년 중퇴. 2003년 10월 정신장애인 사회복귀시설인 ‘태화샘솟는집’ 입소. 고등학교 검정고시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