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 이광수는 평북 정주에서 5대 독자로 태어났다. 지독하게 가난했다. 어머니가 뽕나무 잎을 도둑질해서 키웠다. 그나마 열한 살 때 콜레라로 부모를 잃고 그는 나어린 여동생 둘을 거느린 소년 가장이 돼 있었다.’
문학평론가 이상진씨는 이번 주 발간한 책 ‘한국 근대작가 12인의 초상’(옛오늘 펴냄)에서 “일제 강점기와 전쟁, 그리고 해방정국과 개발 시대를 살다간” 우리 작가 12명을 그들이 처했던 ‘극한 상황’을 중심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가난과 병마와 싸우며 창작했고, 물질의 유혹과 이념의 시험까지 견뎌야 했다”면서, 그들을 ‘역사의 이면’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이씨는 “작가의 생애와 작품은 너무도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판소리 문체가 살아 숨쉬는 작품을 썼던 김유정은 명창 박녹주를 죽어라 짝사랑했고, 풍자하는 이야기를 주로 쓴 채만식은 사실은 지독한 결벽증을 가졌다. 낭만적인 색채로 각인된 나도향은 정말로 낭만적인 20대에 인생을 마감했으며, 작품 속에 오만과 긴장이 넘치는 김동인은 실제로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지독한 가난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최서해는 소설보다 더한 가난을 체험했다.’
이씨는 그 문인들이 “친일의 오점을 남겼든 당대 현실을 외면했든 그들의 삶과 문학은 그대로 우리 근대사의 욕망이고 고민이고 좌절이었다”는 태도로 접근하고 있다.
‘김동인은 말년에 사업에 실패하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수면제에 의존해 살아갔고 수면제에 관한 한 박사가 됐다. 아달린과 누마아르, 칼모틴, 부름 같은 수면제를 늘 옆에 두고 상용했다. 그 중 가장 값싸고 강력한 포수크로랄을 주로 먹었다.’
‘김동인의 단편 ‘발가락이 닮았다’(1932)를 읽은 염상섭은 그것이 늦장가를 간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생각해 동인과 설전을 벌였다. 당대 문단을 주도했던 두 사람은 이 일로 무려 15년 동안이나 관계를 끊고 살았다.’
‘이상의 아버지는 가난하고 무식하고 손가락 세 개를 잃은 장애인이었다. 이상은 큰아버지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이상은 자신을 친부로부터 떼어놓은 큰아버지도, 큰아버지에게 아들을 빼앗긴 친부도 사랑할 수 없었다. 자기분열적인 이상은 실제로 거울을 늘 들고 다녔다. 혼자서 거울로 햇빛을 반사시키며 놀았다.’(시 ‘오감도’)
‘가난뱅이 작가 이효석은 경성 토호 집안이었던 처가에 떳떳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백방으로 직업을 구했다. 중학 시절 은사가 주선해준 취직 자리는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였다. 문인들의 작품을 사전 검열하는 곳이다. 동료들의 지탄이 빗발쳤다. 효석은 열흘 만에 직장을 그만뒀다.’
이상진씨의 책은 김동리 황순원까지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