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수원시 권선동의 권선시장 인근 맥간(麥稈·보릿대)공예 연구원. 25평 남짓 지하 작업실에 들어서자, 벽 여기저기를 가득 메운 크고 작은 작품이 자개처럼 영롱한 빛을 낸다. 내일로 다가온 ‘예맥회’ 정기전시회를 준비하는 맥간공예가 이상수(李相守·45)씨와 문하생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관음보살의 그윽한 미소와 우리 민화(民畵) 속 거북이·봉황, 옛스런 멋을 풍기는 서예 작품들이 모두 보릿대로 만들어졌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맥간공예’란 보릿대를 얇게 펴 이어붙이는 방법으로, 그림이나 글씨를 만들어내는 공예. 제작 과정은 작품 디자인과 보릿대의 결 방향까지 고려하는 ‘도안’ 작업과, 보릿대를 펴고 알맞게 오려 붙이는 ‘세공’ 작업, 나무에 칠을 하는 ‘칠 작업’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겉보리’가 아니라 남부 지방에서 재배하는 ‘쌀보리’의 보릿대 속잎만을 사용하고, 칠작업만 6~7회를 반복해야 제 빛깔을 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내는데는 보통 20~30일 정도가 걸린다.

이상수씨는 70년대 말 처음 이 기법을 고안하고, 관련 실용신안만 3종을 갖고 있는 맥간공예의 창시자. “복잡한 집안 사정 때문에 경북의 한 산속 암자에 머물던 스무살 무렵이었어요. 원래 그림을 좋아해 쪽빛 비단에 순금으로 그리는 ‘금탱화’를 배울 요량이었는데, 우연히 보릿짚단을 쌓아놓은 데 기대 앉았다가 이걸로 밀짚모자나 여치집만 만들게 아니라 그림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직장생활을 하며 잠자는 시간을 쪼개 기법 연구에만 3년 넘는 시간을 투자했고, 1983년 첫 실용신안을 따냈다.

전업 공예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86년. 수원 남문사거리 근처에 있던 ‘선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독특한 작품에 매료된 수집가들의 각광을 받았고, 서울 출판문화회관 전시장과 88년 부산 KBS사옥 개관기념 초대전까지 연달아 전시회를 가졌다. 89년부터 삼성전자 사내 동호회 강사로 초빙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통해 보릿대가 뿜어내는 은은한 빛에 빠져들었다. 91년엔 문하생들이 모여 ‘예맥회’를 결성했고, 회원들은 청주·천안·광주·전주·구미 등 전국 각지에서 맥간공예 전문강사로 활동 중이다. 올해 정기전시회는 회원 28명이 60여점을 출품, 18일~24일 동수원뉴코아 9층 전시장에서 열린다.

이수진(李守珍·여·31)씨는 삼성전자 사내 동호회에서 배우기 시작,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고 삼성전자와 반도체, 갤러리아백화점 등에서 전문강사로 나선 경우. 이씨는 “처음에는 신기한 마음에 취미로 시작했는데, 응용 범위가 무궁무진해 하면 할수록 새로운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오산에서 공방을 운영하며 강사로도 뛰는 손수양(孫守良·여·32)씨는 “자연스러움과 독특함에 빠져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제 내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게 됐다”고 했다.

“도자기가 대우를 받는 것은 뿌리가 있기 때문이죠. 튼실한 뿌리가 있으니 거기서 퍼져 나온 가지도 돋보이는 거니까요.” 올해 ‘경기으뜸이’로 선정되기도 한 이상수씨는 “가구나 기념품 제조업자들이 거액을 제시하며 실용신안을 팔라고 다그치기도 했지만, 대량생산을 하면 작품의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어 모두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영 능력있는 문하생이 나오면 상품화 사업을 맡기고, 나는 앞으로도 계속 보릿대를 쪼개 붙이는 공예가의 길을 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전시장 ☎(031)231-6705, 맥간공예연구원 ☎(031)239-3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