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이기윤(16·인천 연수동)군의 방은 작은 ‘곤충 농장’이다. 그는 한 달 전 자기방에 끈끈이주걱과 알라타 화분 같은 식충(食蟲)식물들을 들여놓은 뒤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아끼는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같은 애완곤충들을 괴롭히던 초파리들을 식충식물들이 ‘소탕’ 해주기 때문이다.
"빠작빠작… 그르륵그르륵… 후둑툭후둑툭…."
초등학생 김상일(13·서울 목동)군 집에는 해질 녘이면 이런 소리가 난다. 야행성인 애완곤충들이 사육통을 긁거나 날다 부딪쳐 내는 마찰음이다. 사슴벌레 등 곤충 6종(種) 50여마리와 함께 사는 상일이는 곤충 관찰하느라 또래 아이들과 달리 컴퓨터 게임엔 시큰둥하다.
이처럼 애완용으로 곤충을 기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학교 앞 문방구점에서 장수풍뎅이는 흔한 상품이다. '애완용 바퀴벌레'도 나왔다.
애완곤충만을 취급하는 전문점도 많아졌다. 24일 서울 화곡7동의 애완곤충전문점 ‘충우(蟲友)’ 사무실. 곤충 1500여마리가 사는 10평 공간은 오후 2시 무렵부터 아이들로 와글와글해졌다. 알과 애벌레를 관찰하는 아이, 사육통과 산란목(産卵木) 등을 만지작거리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해맑은 얼굴이다.
“아이들 눈이 깊어요. 수명이 제일 짧은 장수풍뎅이만 해도 알에서 애벌레가 나오고 그 애벌레가 번데기로 또 성충으로 자랄 때까지 1년 가까이 걸립니다. 곤충을 기르는 아이들은 기다리는 법을 알아요. 요즘처럼 뒤숭숭한 세상에 작고 느리고 조용한 걸 들여다볼 줄 아는 것만한 지혜가 어디 있겠어요?”
충우 주인장 장영철(30)·손종윤(28)씨의 말이다. 97년 개점한 충우는 같은 이름으로 국내 최대(회원수 6700여명) 애완곤충 인터넷사이트(www.stagbeetles.com)도 운영한다.
90년대 말부터 생겨난 곤충전문점과 곤충농장들은 전국 20여개로 불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www.daum.net)에만 애완곤충 관련 카페가 100여곳이 넘는다. 일본의 경우 80년대 초 움튼 애완곤충 산업은 90년대를 거치며 시장이 연간 2조원 규모까지 커졌고 ‘검은 다이아몬드(black diamond·값비싼 검은 곤충을 뜻하는 말)’라는 말도 생겼다. 한국은 아직 애완곤충 인구 1만~2만명에 시장규모는 10억원 수준이지만 해마다 2배씩 몸집이 불고 있다.
왜 지금 ‘애완곤충’인가. 곤충 기르기는 정서 순화에도 도움을 준다는 주장이 있다. 지난 2000년 곤충전문점 ‘파브르’(www.e-fabre.co.kr)를 연 서원준(28·대전 삼천동)씨는 “인터넷에 중독된 아이들 정서를 다스려보려고 곤충을 찾는 부모들이 꽤 있다”며 “곤충들이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꽤 효과를 본다”고 전했다. 곤충 동호인의 약 30%는 성인. 주말마다 곤충채집에 나서는 곤충광 황규하(36·회사원·인천 구월동)씨는 “주인에게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드는 재미는 없지만, 곤충들이 변태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성취욕을 느낀다”고 했다.
애완곤충은 공간을 잡아먹지 않고 조용하고 청결한 데다 세대(世代)가 짧아 기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초보자들은 키우기 쉬운 장수풍뎅이 성충(8000~1만원)을 좋아하고 경력자나 성인들에게는 수명이 2~3년인 왕사슴벌레(3만~4만원)와 넓적사슴벌레(3만~4만원)가 인기다. 곤충의 가격을 좌우하는 건 크기. 애벌레 때 잘 먹여야 큰 성충이 된다. 품종개량에 힘쓴 일본에서는 몇 해 전 8㎝짜리 사슴벌레가 1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곤충 사육은 일부 동물보호론자들은 반대하지만 곤충이 살기 적당한 환경을 찾아내고 멸종을 막는다는 장점도 있다.
곤충은 동물계의 75%를 차지할 만큼 많은 대신, 작고 느리고 약하다. 이런 곤충들을 바라보는 눈이 많아진다는 건 ‘크고 빠르고 강한’ 문화에 대한 거부반응처럼 보인다. 곤충 붐에 대해 강원대 농업생명과학대학 박규택 교수는 “‘자연의 속도’에 대한 그리움”,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유현정 교수는 “문명에 밀려 오그라드는 자연을 돌아보려는 반작용”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