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부~자 되세요" 라는 한 신용카드의 CF는 2002년에 가장
인기있는 인사말이었다. 하지만 주위에 부자가 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대신 검은돈을 꿀꺽 삼킨 권력형 비리 사건들이 줄줄이
심판대에 올랐다.
◆ "무사는 곁불을 쬐지 않는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아들
홍걸(弘傑)·홍업(弘業)씨 형제가 뇌물 수수 혐의로 차례로 구속됐다.
홍업씨의 한 친구는 "그가 룸살롱에서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한 달
술값으로 1억원이 들었다"고 진술하자, 홍업씨는 "술은 한 달에 3~4번
마셨을 뿐이며, 친구들이 나의 '집사'로 지칭했다는 걸 알고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답변했다. 한편 막내인 홍걸씨는 최후 변론 요지에
"저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 시중에는 대통령 세 아들의 돌림자를 딴 '홍삼트리오' 라는
조어가 유행했다.
권력형 비리와 관련해 가장 튀는 인물이었던 최규선(崔圭善)씨는 검찰에
출두하면서 "언론에서는 소설을 쓰고 있고 나는 소설의 주인공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김 대통령을 '붕어빵', 자신을 집권 최대의
공신으로 '앙꼬'에 비유한 '붕어빵에는 왜 앙꼬가 없나'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성역 없는 수사를 천명했던 이명재(李明載)
검찰총장은 취임식에서 "무사는 얼어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라는 말로 화제를 모았다. 야당에서는 "고장난 것은 수리해서
쓸 수 있지만 썩은 것은 수리해도 못 쓴다"며 정치적 공세를 가했다.
◆ "꿈★은 이루어진다" =세간에 회자되던 '게이트공화국'이라는
조어는 2002년 월드컵의 축구열기에 묻혀갔다. '붉은 악마'들이
카드섹션으로 펼쳐보인 '꿈★은 이루어진다'는 올해 최대의 유행어가
됐다. 히딩크 감독을 모델로 한 CF인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도
폭발적인 히트를 했다. 또 "나는 아직 배고프다(I am still hungry)"
"굿바이가 아니라 패어웰(farewell)이라고 하겠다"라는 말도 인기를
끌었다.
월드컵이 채 끝나기 전에 북한의 서해도발이 있었다. 현 정권에 대해
"햇볕(정책)으로 북한이 변한 게 아니라 우리 군이 옷을 벗었다"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이와 관련, 북한이 "유감"이라고 표명하자, 김
대통령은 "사실상 사과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자 한나라당은
"(대통령은) 사과한 것으로 믿고 싶겠지"라고 논평했다.
◆ "담배 그거 독약입니다" =현대상선의 4억달러 대북 지원설 등이
터져 나오자, 국회에서는 "카더라는 증거가 될 수 없다" "현대상선
계좌는 신주 모시듯 한다"라는 공방이 거듭됐다. 한나라당이 "돈으로는
평화를 살 수도, 전쟁을 막을 수도 없다"고 하자,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는 "독일은 통일을 돈 주고 샀다"고 응수했다.
북핵(北核)문제에서는 미국도 가세했다. 콜린 파월 미국무장관은 북한이
핵계획을 포기하지 않으면 암울한 경제와 맞닥뜨릴 것이라며 "북한
어린이 누구도 농축 우라늄을 먹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제임스 켈리 미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도 "핵은 메마른 대지를 경작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 "김대업은 올해의 신인왕" = 김대업(金大業)이라는 인물의 등장은
정가와 검찰을 바쁘게 만들었다. 민주당은 "김대업씨는 의인(義人)이고
올해의 신인왕 후보감이다"라고 찬사를 보냈고, 한나라당은 "김대업을
의인이라고 주장했던 민주당은 당사 앞에 김대업 공적비라도 세워라"고
비꼬았다. 검찰 수사 결과 김대업은 '의인(義人)'에서
'의인(疑人)'으로 추락해 현재 쫓기는 신세가 됐다.
또 국회 안에서는 장상(張裳)·장대환(張大煥) 총리 지명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연달아 낙마했다. 자녀국적·부동산·권력핵심과의
친분설 등으로 공격받은 장상 총리 지명자에 대해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구설수의 백화점 같다"고 촌평했다. 장대환 총리 지명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친목회가 아니라 청문회입니다"라는 말도 나왔다.
8월 태풍 루사는 전국에 걸쳐 2만 여명의 이재민을 냈다.
김진선 강원도 지사는 "재해가 극심했던 곳은 사람들이
억지로 물길을 바꾼 지역"이라며 "이번 수해로 강원도는 물길을 제대로
찾게 됐고 이를 거역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도 병역비리를
앞세운 정치권의 패권싸움은 일반 시민들을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다만
폐암에 걸린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공익광고에 출연해,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유행시켜
시민건강에 공헌했을 뿐이다.
◆ "날이 밝자 뿔뿔이 날아가는구나"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권력의
풍향에 예민한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잇따랐다. 민주당의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여러 새가 같은 가지에 자다가 날이 밝자
뿔뿔이 날아가는구나"라고 읊었다. 민주당 김민석(金民錫) 전 의원은
"후보 단일화를 위해 심청이의 심정"이라며 정몽준(鄭夢準)의
'국민통합21'로 옮겼다. 하지만 노(盧) 후보측은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니 공양미(후원금)가 마구 들어오고 있다"고 자랑했다. 민주당을
탈당한 이인제(李仁濟) 자민련 총재 권한대행은 "시험성적이 나쁠
때마다 가출하는 병이 또 도진다"는 비평을 받았다. 한편, 민주당
천용택(千容澤) 의원은 "만약 이회창이 대통령 되면 이민가겠다"라는
말로 화제의 인물이 됐다. 하지만 나중에 그 말을 철회했다.
◆ "사랑하는 아내를 바꾸란 말입니까" =후보 간에 말 대결도
쟁쟁했다. 이회창 후보는 "대통령은 국민을 태우고 달리는 버스
운전기사인데 경험 없는 초보 난폭운전이 가장 위험하다"고 공격했다.
이에 노 후보는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가락시장에서 배추
나르는 이 후보를 겨냥해 "나는 앞치마를 두르지 않아도 그냥
서민"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의 부인 한인옥씨가 행한 "하늘이 두 쪽
나도 정권을 잡아야 한다"라는 연설도 화제가 됐다. 노 후보측 연예인
명계남씨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연예인과는 종자가
다르다"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반면, 노 후보는 장인의 좌익활동과 관련, 논란이 일자 "사랑하는
아내를 바꾸란 말입니까"라는 말로 모두 잠재웠다. 노 후보는 또
"여러분, 그러면 쪽팔리잖아요" "미국에 사진 찍으러는 안 가겠다"
"남북관계만 잘 되면 다른 것은 깽판쳐도 된다"라는 화제작을 많이
쏟아냈다. 뒤늦게 대선에 뛰어든 정몽준(鄭夢準) 후보는 "승리의 신은
여신(女神)인데 여신은 나처럼 키 크고 잘 생긴 젊은 남자를
좋아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 "한나라당은 부패 원조당 민주당은 부패 신장개업당" =정가의
지형이 바뀔 때마다 '반창(反昌)' '노풍(盧風)' '정풍(鄭風)'
'단풍(單風:후보 단일화 바람)' 등의 조어가 유행됐다. 민주당 내
세력을 노 후보에 대한 선호 정도를 기준으로 '친노(親盧)'
'비노(非盧)' '반노(反盧)'로 구분하기도 했다. 반노(反盧) 진영의
김영배(金令培) 의원은 "노(盧)는 설렁탕 한 그릇 안 사는 후보"라고
비판하다가 역공을 받았다. 대선 TV토론에서는 권영길(權永吉)
민주노동당 후보가 만든 "한나라당은 부패 원조당, 민주당은 부패
신장개업당"이라는 조어가 장안의 화제가 됐다.
◆ "네 놈을 반드시 찍어내고 말 거야" =이번 선거에는 법원의 호적
정정 허가결정을 받고 호적상 '여'로 바뀐 하리수씨도 투표했다.
그녀는 "그 동안 법적으로 남자라서 여탕에 들어갈 때 남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데 이제 이런 걱정은 없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노무현 당선자는 쉬러 내려간 제주도에서 사진기자들로부터
"숲길을 걸으며 정국을 구상하는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청받자,
"걸으면 다 정국 구상하는 것인가"라고 답변한 뒤 걸었다. 거의
침묵하며 지내던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노(盧) 당선자는 (밤이 되면
빛을 발하는) 낮의 촛불 "이라는 특유의 비유법으로 그의 존재를
알렸다.
민주당 내에서는 동교동계가 밀려나는 권력 재편이 진행되자, 올 초반
강세를 탔던 TV드라마 '여인천하'의 "뭬야! 네놈을 반드시 찍어내고
말거야"라는 유행어가 되살아났다. 그리고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말도 정가와 직장 등에서 여러 가지 변주된 형태로 힘을
떨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