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부식씨는 1980년대에 부산 미국문화원에 불을 질렀다. 미국이
독재정권을 지원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서 무고한 청년
하나가 목숨을 잃었다. 옥중의 문씨는 그것으로 반미투쟁의 '영웅'이
되었다. 그로부터 20여년― 문부식씨는 스스로 '영웅'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국가폭력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안의 폭력'부터
없애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자신을 깊이깊이 되돌아본 결과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 새롭게 불거지기 시작했다. 일부에서 "국가의
거대한 폭력을 지적하기도 부족한데 왜 그에 맞서 항거해온 사람들의
저항폭력을 문제삼고 나오느냐?" "2000년대의 인간으로서 80년대의
인간을 몰아붙이고 학대하는 일…"이라며 일제히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문부식씨가 자신의 방화(放火)뿐 아니라 동의대 사태의 폭력성도
"민주화 운동 아니다"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2000년대의 인간이 80년대의 인간을 비판하는 것은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일인가? 그야 그 뉘라서 80년대, 70년대, 60년대,
일제시대, 조선시대 인간의 고생과 헌신 그 자체를 깎아내릴 억하심정이
있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한때의 혁혁한 행적이나 사상이라 할지라도
세월이 지나면 반드시 비판과 극복의 대상이 되게끔 운명지어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의 당연한 흐름이고 마땅히 그렇게 돼야 한다.

80년대 386세대가 고생한 것을 누가 모르나. 그러나 그들의 한계와
문제점 또한 이제는 당연히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 돼야 하고, 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그들 의로운 사람들을 비판해선 안 된다"고 하는
금기(禁忌)와 성역(聖域)의 시효가 한참 지났기 때문이다. 386세대가
드러내고 있는 문제점은 이미 사회적인 쟁점이 되고 있고, 그것은 그들의
이론, 그들의 근·현대사관, 그들의 정서(情緖)와 마음, 그들의 행태,
그들의 문화…에 걸쳐 21세기적 시각에서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발전이 있다. "감히 우리를? 그렇게 하면 그대는
자동적으로 반(反)민족, 반(反)민주!"라는, 있을 수 있는 예상반발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국가의 거대한 폭력을 지적하기도 부족한데…"라는 본질적 문제와
관련해서도 문부식씨는 아주 중요한 철학적·존재론적 화두를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386세대가 등한히 해 온 '사회과학적 인식 이상의 것'의
막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는 까닭이다.

문부식씨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악(惡)을 근원적으로 이길 수 있는 길은
나도 악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선(善)으로 나가는 것"이라는
철학이다. 이것은 소크라테스, 붓다, 예수, 공자, 톨스토이, 간디, 마틴
루터 킹, 달라이 라마, 마더 테레사…가 지난 수천 년 동안 그토록
열렬히 인류에게 설파해온 비폭력 저항의 철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류의 역사는 물론 프랑스혁명 같은 방식에 의해서도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정치투쟁의 역사는 또한 구악( 惡)을 대치한 새로운 악의
되풀이였을 수도 있다. 그 점에서 인류의 스승들은 악 자체의 근본적인
극복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결론이 바로 인간 내면에
스며든 악에 대한 영성적 투쟁― 인간 개개인의 자기와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유물론적 좌파나 세속적 권력투쟁가들은 이것을 두고 투쟁의
포기니 저항의식의 마비니 하며 폄하한다.

그러나 간디는 이렇게 답변한다. "나의 비폭력 저항은 또 다른 차원에서
적극적인 저항이다. 비폭력 저항은 저항의 부재(不在)가 아니라, 악에
대해서 악이 아닌 선으로 싸우자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저항은 보다
높고 효과적인 차원으로 옮겨가게 된다." 독(毒)에 대해 '나 역시
독'으로 변질하는 것은 악업(惡業)과 악연(惡緣)의 악순환이라는 끝없는
카르마(karma)를 증폭시키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다함께 독으로부터
구원하자는 본래의 취지를 잃는다는 것이다.

문부식씨 같은 깨어남(awakening)이 시작되면서, 그리고 '붉은 악마'
같은 밝은 빛깔의 세대가 출현하면서, 80년대의 관성(慣性)은 또 하나의
'구'로 젖혀지고 있음을 분명히 느낀다.

(류근일/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