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미국문화원 방화(放火)사건을 일으켰던 문부식(文富軾)씨가 뜻밖의
고백을 하고 나섰다. 문씨는 12일자 조선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동의대
사건 민주화 인정은 납득할 수 없다"며 "민주화 운동이라도 면책특권은
없다"고 밝혔다.

80년대 반미(反美)운동의 선구적 사건을 주도해 한때 운동권에서
'영웅'으로 간주됐던 문부식씨는 사건 발생 후 자신의 행동이 과연
옳았던 것인지를 묻고 또 물었다고 했다. 그 결과 "우리 안의 폭력부터
성찰해야 국가 폭력도 비판할 수 있다"는 성찰적 비판론에 도달했다.
문부식씨의 참용기가 돋보이는 것은 바로 그 대목이다. 남과의 싸움보다
자신과의 싸움이 더 어렵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독선적 비판론이 큰 세(勢)를 이루고 있다. 자기만
옳다고 확신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선민(選民)의식과 메시아 의식이
그것이다. 문씨는 바로 이 독선적 비판론에 조용한, 그러나 분명한
"아니오"를 던진 것이다.

그는 또한 어떤 이념이나 가치도 생명에 우선할 수 없다는, 절절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세계관을 펼쳐보였다. "우리 행동으로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데 책임을 느껴 부산 미문화원 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보상신청을 할 수 없었다" 등의 발언에서는 40대에 이른 그의 성숙이
묻어난다. 젊은날의 상처를 딛고 어렵사리 정신적 홀로서기에 나선 한
지식인의 성숙한 용기에 갈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