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와 불교가 유연하고도 적극적으로 교감하고 있다. 지난
24일 송광사 법정 스님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명동성당에서 강연회를
가졌다. 스님이 명동성당에서 강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제
대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수녀들이, 오른쪽에는 스님들이 앉았다. 법정
스님은 "인연에 따라 왔지만 천주의 섭리"라고 말해 성당을 가득 메운
1천5백여 신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사진설명 :
97년 12월14일 길상사 개원법회에 참석한 김수환 추기경이 법정스님(왼쪽),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과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
그보다 앞서 지난 16일에는 불교 조계종 송월주 총무원장이 불에탄
서울 중구 중림동 약현성당을 위로 방문했다. 작년 12월14일엔 서울
성북동 길상사 개원법회에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해 축하했다.
천주교와 불교 간에 잇따르는 화합 장면을 두고, 정진홍 서울대 종
교학과 교수는 "다행스럽고 희망적인 현상으로 매우 반갑다"며 "천주
교는 종교가 여럿이라는 열린 마음을 지니고 있고, 불교는 배타나 독
선을 멀리하는 전통이 있어 쉽게 서로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
했다.
정 교수는 "천주교와 불교 교리가 서로 다르지만 둘 다 설교보다
예불이나 의식을 중시하는 것을 비롯해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
다. 천주교의 유연성에 대해 그는 "가톨릭이 한국에 전래되는 과정에
서 전통문화와 갈등을 겪으며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며 "그런 경험
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이제 오히려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보았다.
류성민 한신대 종교학과 교수는 "고위 성직자들 사이에서만 이뤄지
는 교류가 일반 신도들 사이에도 확산되고 3·1운동처럼 통일이나 환
경, 외국인 노동자 문제 같은 민족 공동문제 해결에는 종교를 초월해
협력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장덕필 명동성당 주임신부는 "종교간에 화합하는 행사가 앞으로도
자주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 조계종측도 "총무원장이 약현성
당을 방문한 것은 귀중한 문화재를 잃은 아픔을 함께 나누자는 뜻도
있지만 그보다 종교인들이 협력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
다.(이준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