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카터와 김영삼과 박정희 ##.
여기서 잠시 숨을 멈추고 우리는 박정희가 이날 왜 이토록 집요하게
김영삼과 미국에 대하여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는지를 알
아볼 필요가 있다.
사진설명:1979년 6월 29일 카터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다.
박 대통령은 카터에 대한 경멸감을 깔고 회담에 임하여 카터를 화나게 만들었다.
김영삼이 박정희를, 정치공작을 일삼는 독재자로 생
각했듯이 박정희는 김영삼을 사대적 근성을 가진 위선자로 보고 있었다.
박정희는 독재정권을 혼내준다며 미국의 세계전략에도 불리한 주한미군
철수 정책을 들고 나온 카터 미국대통령을 경멸했다. 그는 또 이 카터
와 미국의 힘을 믿고 자신에게 도전한다고 본 김영삼을 더 경멸했다.
박정희는 1979년에 들어와서는 카터와 김영삼에 대한 이런 경멸감을 정
책으로 표현하기에 이르러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다. 카터의 방한을 앞
두고 그는 통역을 담당할 최광수 의전수석을 불러 "인권 좋아하시네를
영어로 어떻게 통역할지에 대해서 미리 생각을 해두어"라는 취지의 당
부를 했다.
6월29일 밤 아홉 시를 넘어 카터 대통령은 도쿄를 출발하여 김포에
도착했다. 당시 경호실 경호과장으로서 카터 도착시의 근접경호를 지휘
했던 함수용(현재 한국프로안전시스템 회장)은 '아주 모욕적인 대우를
손님으로부터 받은 기억'을 증언하고 있다. 카터를 태운 전용기는 도쿄
를 출발하여 김포에 도착하게 되어 있었는데 백악관 경호실에서는 우리
경호실에 대해서도 보안을 한다면서 정확한 도착시각을 알려주지 않았
다. 이 바람에 박 대통령은 미리 나와서 근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수행기자단을 태운 비행기가 먼저 내리고 카터 전용기가 내리는 바람에
키가 작은 박 대통령은 미국 기자들 속을 겨우 헤집고 나가 카터와 악
수를 나누어야 했다. 박 대통령을 끌다시피하여 카터 있는 데로 모시고
갔던 함 과장은 "하마터면 인파와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놓칠
뻔했었다"고 했다. 간단한 악수를 나눈 다음 카터는 헬기편으로 미군
부대로 날아가버렸다.
다음날인 6월30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카
터를 앉혀놓고 혼자서 40분간 국제안보정세를 강연하듯이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쏟아냈다. 주한미군철수의 부당성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화
가난 카터는 옆자리에 앉은 밴스 국무장관에게 '이 자가 2분 이내에 입
을 닥치지 않으면 나는 이 방을 나가버리겠다'는 메모를 써 건네주었다.
다음날 만찬연설에서도 박 대통령은 뼈 있는 한 마디를 집어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질서 있는 자유를 존중하며 그 속에서 개인의 창의를 십분
발휘케 하는 제도, 곧 우리의 문제 해결에 가장 효율적이고 우리 실정
에 맞는 민주주의를 찾아냈으며 이를 착실히 발전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카터는 이런 대접에 대한 보복인지 공항으로 나가는 차중에서 박정
희 대통령에게 "하느님을 믿으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이 카터가
신민당 김영삼 총재를 싸고돈다고 생각한 박 대통령은 9월부터는 김영
삼을 구속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낌새를 눈치 챈
미국은 김영삼을 구속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냈
다. 9월15일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는 최광수 의전수석을 만나 '단
도직입적인 긴 대화'를 가졌다. 최근에 비밀등급에서 해제되어 공개된
글라이스틴의 '국무부 장관 전 보고문서'에 따르면 '상부의 지시를 받
아 말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내 말을 그대로 대통령에게 전해달라고
최수석에게 요청했다'는 것이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만약 한국정부가 행동을 자제하지 않으면, 예컨
대 김영삼을 구속한다든지, 혹은 최근에 카터가 방한했을 때 만났던 사
람들을 구속하면 한국정부의 이미지는 미국에서 심각한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정희는 외교적으로 점잖게 표현된 이 요청을
'우리하고 친한 사람들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강자의 협박정
도로 해석했던 것 같다. 바로 이날 문제의 인터뷰 기사가 뉴욕 타임스
에 실렸다.
김영삼 총재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의원직 제명의 단초가
되는 발언을 했다.
'내가 주한 미국 대사관 관리들에게 미국은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압력에 의해서만이 (박 정권을)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할 때마다 그들은
그런 행동은 내정 간섭이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난센스이다. 주한미
군 3만 명은 간섭이 아니란 말인가'.
글라이스틴 대사는 '김영삼은 워싱턴에서도 잘 아다시피 우리 대사
관으로부터 상당한 배려의 대상이 되어왔기 때문에 이 기사에 대해서
논평을 하게 되면 그와 부딪치게 되므로 김영삼의 말을 반박하라는 권
유를 거절하였다'고 국무부에 보고했다. 9월19일 신민당 대변인은 성명
서를 발표하여 '김총재의 인터뷰는 에드워드 케네디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경선을 도와주기 위하여 카터를 공격한 것이다'고 해명했다.
유정회는 공개질의를 통해서 '주한미군의 성격을 내정간섭으로 본
것은 북괴의 상투적 주장과 일치된다고 보지 않는가, 궁극적으로는 한
국정부가 미국 통제하에 예속되어야 한다는 뜻인가, 미국정부가 직접적
인 압력으로 한국정부를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은 확신인가 실언인가'라
고 따졌다.
9월24일 여권이 김영삼 제명을 밀어붙이려고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글라이스틴 대사는 국무부에 대하여 '우리 대사관은 한국 정부당국의
요인들에게 김영삼 제명은 한미관계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는
내용의 의사를 전달하겠다고 보고했다. 유혁인 정치담당 수석은 10월
중순에 열리는 연례 한미 국방장관회의에 참석하러 브라운 미 국방장관
이 오는데 그 전에 김 총재를 구속하면 문제가 확대된다고 대통령을 말
려 10월26일 현재로는 보류된 상태였다.
9월에서 10월 사이에 박 대통령은 미국정부로부터 김영삼에게 손을
대면 경제적 보복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명시
적 협박을 연속적으로 받고 있었다. 9월27일 미 국무부 홀브룩 차관은
방미한 박동진 외무장관에게 '야당에 대한 탄압(Repression against the
Opposition)'이란 강한 표현을 쓰면서 "정부내의 고위정책협의회에서
대한차관에 대한 승인을 보류하도록 은행에 지시했다"고 통보했다. 미
국정부는 10월4일에 김영삼의 국회제명이 있자 국무부 성명으로써 '깊
은 유감'의 뜻을 표시하고는 주한미국 대사를 소환했다. 에드워드 케네
디 상원의원도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10월13일 미 국무부가 주한 미국 대사관에 보낸 전문에 따르
면 '글라이스틴이 의회와 접촉했던 바 한국정치사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의원들은 거의 없었다. 오직 한 의원만이 우리가 가진 안보상의
지렛대를 이용하여 정치적 자유의 확대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미국 정부는 박 대통령에 대하여 '친한적인 의원들도 비판적
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논리를 항상 되풀이하고 있었다. 10월13일 밴스
국무장관은 김용식 주미 대사를 불러 이 같은 논리를 내세워 가시적 완
화조치가 없으면 한미관계가 심각한 사태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
고는 대통령에게 이 뜻을 전해달라고 요청했다. 부산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10월18일 연례안보회의에 참석하러 와 있던 브라운 미 국방장관
은 카터의 친서를 박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자리에서 '야당과의 대화를
재개함으로써 전면적인 탄압이 임박했다고 걱정하는 국내외의 인사들을
안심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