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는 작품 자체의 사연도 절절하지만 이후 소장 과정에도 곡절이 많았다. 이 불후의 명작을 우리는 자칫하면 못볼 뻔했다. 최초 소장자인 역관 이상적이 세상을 떠난 뒤 '세한도'는 그의 제자였던 김병선을 거쳐 한말 권세가인 민영휘 집안으로 넘어갔다. 그 후 추사 연구에 일가를 이뤘던 경성제대 교수 후지스카 지카시(藤塚隣·1879~1948) 소유가 된다. 1943년 그가 이 그림을 갖고 일본으로 귀국하자, 서예가이자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컬렉터였던 소전 손재형이 이듬해 거금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일 때였다. 도쿄는 밤낮없이 계속되는 연합군의 공습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손재형은 후지스카의 집으로 찾아가 100일간 문안하며 '세한도'를 넘겨달라고 간청했다. 감복한 후지스카는 "결국 내가 졌다"며 돈도 받지 않고 '세한도'를 건넸는데, 석 달 뒤 후지스카 집은 폭격을 맞았다. 그가 소장한 상당수 책과 자료가 불타버렸지만 '세한도'는 극적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손재형이 귀국해 이 기쁜 소식을 알리자 위창 오세창은 이렇게 칭찬했다. "폭탄이 비와 안개처럼 자욱하게 떨어지는 가운데 어려움과 위험을 두루 겪으면서 겨우 뱃머리를 돌려 돌아왔다. 만일 생명보다 더 국보를 아끼는 선비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소전은 영원히 잘 간직할지어다."

하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세한도'를 찾아온 손재형은 195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돈이 부족해지자 소장품을 저당잡힌다. 결국 개성 갑부인 손세기의 소유가 됐고, 아들인 손창근씨에 의해 국민의 품에 안겼다. '세한도'의 11번째 주인은 국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