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규의 國運風水] 6·25 유공자는 현충원에, 독립운동가는 효창원에 墓를 쓰자

조선일보
  •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2020.07.25 03:00

[아무튼, 주말]
국가유공자 무덤과 풍수

채명신 장군 묘
“나를 파월 장병이 묻혀 있는 묘역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서울 동작동 현충원 사병 묘역에 안장된 채명신 장군의 묘(맨 앞). 사병 무덤과 같은 규모다. /김두규 제공
"문상(問喪)은 문상이다."

우리 시대의 어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 토요일 자 조선일보에서 죽음이 정치화되는 것을 탄식하며 하신 말씀이다. 1936년 스페인에서 발생한 좌익(공화파)·우익(국가주의자) 내란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우익의 프랑코 총통은 수도 마드리드 서북쪽 54㎞에 '전몰자의 계곡'이란 국립묘지를 조성하고, 희생자 모두를 이곳에 안장시켰다. 살아서 적이었지만 죽어서는 모두 같은 국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살아서나 빨갱이제 죽어서도 빨갱이여"라며, 좌익 지도자이자 적이었던 형(염상진)의 효수된 머리를 장대에서 내리게 한 우익 지도자 동생(염상구)의 말이 떠오른다(조정래 '태백산맥'). 1975년 프랑코 총통이 죽자 그 역시 '전몰자의 계곡'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작년에 그의 무덤은 파묘되었다. 좌익의 집요한 반대 때문이었다.

박원순 시장의 극단적 선택과 백선엽 장군의 죽음이 정쟁의 도구가 되면서 시끄럽다. 특히 백선엽 장군의 안장지에 대해 논란이 시끄러웠다. 서울 현충원에 모셔야 한다는 측과 불가하다는 세력 간의 갈등 때문이었다. 백 장군은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현충원 안장이 불가하다고 주장한 사람 가운데 전직 대통령 아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DJ는 대전현충원에 이미 조성된 '대통령 묘역'을 사양하고 서울 현충원에 '없는 자리'를 만들어 안장되었다. 게다가 창빈안씨(선조 임금 할머니) 묘역을 침범하는 '범장(犯葬·남의 산소를 침범하여 묘를 쓰는 행위)'을 저질렀다. 조선에서는 명백한 불법이었다. 2015년 작고한 김영삼 대통령도 대전현충원 '대통령 묘역'을 사양하고 서울 현충원에 '없는 자리'를 억지로 만들었다. 풍수상 길지라는 이유도 있었다. 이러다 보니 국가유공자 안장 원칙이 무너졌다. '백 장군 서울 현충원 안장론'도 이러한 원칙 부재에서 기인한다.

풍수학자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에 따르면, 두 곳(DJ와 YS 무덤) 모두 길지는 아니란다. '국가유공자' 안장 문제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발생할 수 있다. 일제에 강점당한 과거와 6·25라는 민족상잔의 상흔 때문이다. 풍수적 해법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 주제별로 묘역을 달리하여 국가유공자를 안장한다. 독립운동가, 6·25 유공자, 민주화 열사, 정치인(대통령) 등의 묘역을 따로 만든다. 새롭게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기존 국립묘지들을 재정비한다. 서울 현충원은 본디 6·25 전사자를 위한 묘지였다. 따라서 순수하게 군인들을 위한 묘역으로 만든다. 지금은 장군 무덤과 사병 무덤이 위치와 규모에 서열이 있다. 죽음 앞에선 모두 평등하다. 규모와 공간 배치를 공평하게 하자. 사병 옆에 안장된 채명신 장군 묘가 모범 사례이다.

둘째, 용산구 효창동에 있는 효창원 앞을 가로막는 효창운동장을 없애고, 그곳을 독립운동가 무덤으로 확대한다.

셋째,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하거나 고향에 안장한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사후 자신의 고향이나 생가에 안장되어 추모객과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넷째, 수유리 북한산 자락에 신익희·이시영·김창숙·김병로·이준·유림 등 애국지사들의 묘가 우거진 잡목 속에 산재한다. 그 아래 계곡에 음식점들이 시끄럽다. 일대를 국립묘지로 지정하고 묘역을 정비하여 근현대사 교육의 장으로 삼는다.

마지막으로 국가유공자 묘역 명칭이 '○○원' 혹은 '○○묘지'이다. 임금 무덤을 능(陵), 태자(세자) 무덤을 원(園), 일반인 무덤을 묘(墓)라고 부른다. 중국과 북한도 국가유공자 무덤을 '혁명열사릉'이라 표기하며, 일본도 '능(陵)'이라 표기한다. 우리만 격이 한 단계 낮은 '원'을 쓰고 있다. 능으로 격상시킴이 옳다. 국격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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