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샤워하는데 머리에서 뭐가 툭 하고 떨어져요. 그놈이 또 나온 거죠."

20일 오전 인천 계양구 계양2동 빌라에 사는 한진욱(51)씨가 "오전에 수돗물에 섞여 나온 벌레"라며 투명한 플라스틱 컵을 내보였다. 컵 속에서 2㎝쯤 되는 갈색 벌레가 꿈틀거렸다. 한씨는 "지난 14일 처음 벌레를 본 뒤로 날마다 한두 마리씩 나온다"고 했다. 그는 벌레 10여 마리를 모아둔 그릇도 보여줬다. 한씨는 "오전에도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에서 3명이 나와서 보고 갔다"며 "오늘로 세 번째 방문인데 매번 대답은 '원인 분석 중'이라고만 한다. 답답하다"고 했다.

◇시민들 앞다퉈 필터·생수 사들여

지난해 6월 '붉은 수돗물' 사태를 겪었던 인천에서 시작된 '수돗물 유충'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불안해진 시민들이 수도 필터와 생수, 정수기, 구충제 등을 앞다퉈 사들이고 있다. 특히 수돗물 유충 사태의 진원인 인천에서 필터 등 수도용품 판매가 10배가량 급증했으며 생수도 평소보다 30% 이상 많이 팔렸다. 지난 14~19일 인천 지역 이마트 매장에서는 수도용품이 한 달 전에 비해 10배가량 더 팔렸다. 정수기 판매도 5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전국 이마트 매장에서는 수도용품은 평균 138% 증가했고, 생수 판매는 4% 정도 늘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제품 확보가 어려울 정도로 팔려나간다"고 말했다.

20일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서 고객들이 생수 묶음을 카트에 싣고 있다. 수돗물 불안이 퍼지면서 인천 지역의 경우 생수 판매가 평소보다 30%가량 증가했다.

이 같은 현상은 인천 외 다른 지역에서도 수돗물 유충 신고가 늘어나면서 더욱 확산하고 있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19일 오후 11시쯤 중구 만리동에 있는 오피스텔 5층에서 "샤워를 하고 나니 욕실 바닥에서 1㎝ 길이 붉은색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서울물연구원에서 벌레를 수거해 분석했다. 서울시는 20일 오후 "오래된 배수구에서 벌레가 생겨난 것으로 보이며, 해당 오피스텔에 공급되는 수돗물에서 유충과 알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에서는 중랑구와 영등포구에서도 유충 신고가 들어왔다. 그러나 서울시는 "16~17일 환경부와 공동으로 모든 정수센터와 배수지를 일제 점검했으며 유충 유입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밝혔다.

부산에서는 지난 14~19일 '수돗물에서 유충으로 보이는 이물질을 발견했다'는 신고가 11건 접수됐다. 부산 중구, 영도구, 부산진구, 남구, 사상구, 수영구, 동구, 금정구 등 여덟 지역에 걸쳐 있다. 부산시에서 현장 확인 결과, 11건 중 4건이 파리·모기·깔따구 등의 유충이었다. 경기도 파주와 안양·용인 등의 아파트 단지 세면대에서 유충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94건 접수됐으나 대부분이 수돗물에서 서식할 수 없는 나방파리로 확인됐다. 충북 청주 지역 수돗물에서도 유충이 발견됐다는 의심 신고가 여러 건 접수돼 시 당국이 현장 조사에 나섰지만, 수돗물 유충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사례는 없었다.

◇문제 된 인천 정수장, 개방된 수조에 벌레 유입된 듯

환경부는 인천시 서구에서 목격된 깔따구 유충의 경우 정수의 마지막 단계에 설치된 입상활성탄지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구 지역 수돗물을 정수하는 공촌정수장을 조사한 결과 입상활성탄지의 상부가 노출형으로 이 중 한 곳에서 유충이 발견됐다. 윤남희 한국수자원공사 맑은물운영처 차장은 "입상활성탄 자체는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정화 방식"이라며 "물이 고여 있는 수조가 개방형으로 운영돼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 지역의 수돗물 벌레는 저수조·배수구·화장실 등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용태순 연세대학교 환경의생물학과 교수는 "깔따구는 조건만 맞으면 순식간에 수천, 수만 마리로 급증하는 특성이 있다"며 "기온이 따뜻하고 습한 환경이 갖춰지니 대량으로 번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