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팔리니 불태웠다" 벼랑 끝에 선 코로나 시대의 작가들

입력 2020.07.11 16:03

지난 5일 오후 6시30분 대구 중구 수창동 수창청춘맨숀 앞마당에서는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곧 펼쳐질 ‘기상천외의 쇼’를 기다렸다.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가 상영되기를 기다리는 관객들 모습이었다.
팔리지 않은 작품을 불태우는 모습. /수창청춘맨숀
팔리지 않은 작품을 불태우는 모습. /수창청춘맨숀


이윽고 그 ‘쇼’가 벌어졌다. 누군가 불길이 타오르는 화로에 작가들의 작품을 넣어 불태웠다. 이를 보던 관람객들은 “아까워라 멀쩡한 작품을 불에 태우고…”라며 안타까워 했다. 작품을 제작한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불길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숙연해졌다.

불길속으로 사라진 작품은 모두 7점. 모두 작가들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보석’이었다. 그러나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불길에 타들어가는 모습을 숙연하게 지켜보았다.

이날 퍼포먼스는 ‘안팔불태’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행사였다. ‘안팔불태’란 ‘안팔리면 불태운다’의 줄임말이다.
'안팔불태'의 기획전에 전시된 작품들. /수창청춘맨숀
'안팔불태'의 기획전에 전시된 작품들. /수창청춘맨숀


대구현대미술가협회(회장 이우석)와 수창청춘맨숀(관장 김향금)이 주최·주관해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4일간 개최한 ‘수창아트페어’의 기획전 명칭이다.

‘안팔불태’가 기획된 취지는 대구를 덮친 코로나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곤경을 겪고 있는 대구의 작가들을 위해서라고 했다. 작가들이 ‘안 팔리면 불태운다’는 절박한 각오로 전시회에 참여한 것이다.

주최 측은 “코로나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음악가 등 공연예술가들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일정 부분 받아 다소 숨통이 트였지만 우리처럼 미술하는 사람들은 한푼도 지원받지 못해 어려운 상황을 결사의 각오로 헤쳐 나간다는 취지로 전시회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대구아트페어 전체에는 97명의 작가가 400여점의 작품을 내놓고 전시와 판매를 진행했다. 이중 ‘안팔불태’에는 30명의 작가가 118점의 작품을 내놓았다.

‘안팔불태’라는 문구 때문인지 관람객들의 관심은 다른 전시회보다도 높았다. 관람객들 상당수는 혹시 자신이 찍은 작품이 불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심정에 얇지만 호주머니를 열었다.

일부 대구시의원들도 가세해 판매에 붐을 일으켰다. 기사를 취재하던 기자들도 기꺼이 지갑을 열어 응원했다.

심지어 일부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판매돼 생긴 작품값을 동료 작가들의 작품을 구매하는데 쓰기도 했다. ‘작품 구매 품앗이’였다.

전시회를 기획한 대구현대미술가협회 이우석 회장은 “‘안팔불태’에 참여한 작가들이 ‘나만 잘 먹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사주기도 해서 너무나 보기 좋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열정으로 110점 이상의 작품이 팔렸다. 작품이 불태워지지 말라는 성원 덕분이었다.

그러한 응원에도 불구하고 끝내 팔리지 못한 작품이 나왔다. 6명의 작가들이 제작한 6점이 구매자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중 1명은 팔린 작품을 구매자와 협의해 불태웠다. 결국 7점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주최측과 참여 작가들은 당초 약속한대로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주인을 만나지 못한 작품의 제작자들은 “작품은 아깝지만 애초에 약속한 것이니까 작품을 불태웁시다”며 거사를 감행했다.

코로나가 탄생시킨 ‘희귀한 퍼포먼스’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코로나가 없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장면이다.

코로나가 남긴 상처를 극명하게 보여준 이번 사건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각기 다른 사연을 갖고 있었다.
양성옥의 작품 2점. 왼쪽 작품은 추첨을 통해 관람객에게 주어졌고, 오른쪽 작품이 팔리지 않아 불태워졌다. /양성옥
양성옥의 작품 2점. 왼쪽 작품은 추첨을 통해 관람객에게 주어졌고, 오른쪽 작품이 팔리지 않아 불태워졌다. /양성옥


그중 한 명인 양성옥(71)씨는 가장 연장자이기도 하다. 빗자루 작가로 알려진 그는 16년전 느닷없이 찾아온 뇌졸중으로 쓰러진뒤 10여년 동안 작가생활을 중단했다. 재기에 성공해 다시 작업을 하기 시작한 것은 5년전이다.

그는 이번에 화선지에 빗자루로 작업한 50호 크기의 작품 2점을 내놓았다. 그리고 떡하니 작품가격으로 1500만원을 붙였다. 전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작품은 좋은데 그만한 돈으로 구매를 하기가 부담스럽다”며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전에도 그의 작품은 다소 형이상학적인 표현방식과 주제 때문에 선뜻 관람객들은 사가기를 어려워했다.

결국 2점은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약속대로라면 2점 모두가 난로속으로 들어가야할 운명이었다. 그나마 다행이 작가 양씨는 추첨을 통해 작품 1점을 관람객에게 선물했다.

다른 1점은 결국 화로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의 심정을 그는 “원래 제 작품이 팔리리라고는 생각을 안했고, 역시 코로나로 인해 호주머니가 더욱 얇아진 관람객들이 부담스러워 했는데 결과는 예상대로 나타났다”고 말하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형이 동생을 위해 불길속으로 들어가 다시 태어나는 기분, 축제와 같이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됐다”고 표현했다.

또 “제 작품의 모티브가 된 것과 같이 빗자루로 쓸고 또 쓸어 마음을 정화시키는 기분이 됐다”고도 했다. 그는 “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고통스러운 코로나 사태를 이겨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고수영의 작품. /고수영
고수영의 작품. /고수영


조각을 하는 고수영(54)씨도 판매되지 못한 작품을 제작한 주인공이다. 그는 이번에 아크릴캔버스 위에 철조각을 하트 모양으로 붙인 작품 ‘사랑’ 1점과 호박 모양을 형상화한 평면작품 1점 등 2점을 내놓았다.

다행이 호박을 형상화한 평면작품은 동료 작가가 구매해 주어 살아남았다. 하지만 끝내 ‘사랑’ 1점은 살려내지 못했다.

그는 “원래 제 작품이 구매자들이 좋아할만한 작품이 아니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역시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고 씁쓸해 했다.

코로나 시대에 들면서 그 역시 피해자다. 예년 같으면 한 해에 10차례 이상 개인전을 비롯 그룹전, 동호인전 등의 전시회에 참여했다. 올해는 지난 6월에 들어서야 비로소 전시회가 있었다. 지금까지 모두 3차례다.

지난 5월6일부터 12일까지는 서울 인사동의 경인미술관에서 전시회가 계획돼 있었다. 그러나 난데 없는 코로나로 계약금만 날린채 전시회를 내년으로 미뤄야 했다.

분신과도 ‘사랑’을 태워야 하는 심정이 어땠느냐고 묻자 “작가의 자존심을 태우고 절박함을 태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직접 화로에 넣었다.

고씨는 “제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조각작품을 주문제작하는 경우가 많아 코로나로 인해 피해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회화 작가들은 코로나로 인해 전시회는 커녕 사정이 낳은 편에 속한다"는 말로 위안을 삼았다.
은윤의 작품. /은윤
은윤의 작품. /은윤


회화 작업을 하는 은윤(43)씨는 코로나의 최대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3년전까지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대학원에서 미술사 박사 과정을 밟았다. “마흔이 되면 전업작가로 나서겠다”고 선언했고, 이런 선언을 실천으로 옮겼다.

작년까지 1년에 10차례 정도는 전시회도 열었다. 주택의 대문을 작은 회화작업으로 완성해 캔버스에 붙이는 ‘대문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올해 코로나로 인해 4월에 한번 6월에 한번, 딱 두번 전시회를 연 것이 전부다. 하반기에는 다달이 전시회가 계획돼 있지만 코로나가 다시 극성을 부리면 취소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때문에 올해 들어서 작품 판매 수입은 거의 ‘0원’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그는 화려한 꽃작품을 내놓았다. 작품 가격으로 200만원을 매겼다. 관람객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문의를 해왔지만 실제 구매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은윤씨는 “저의 위치가 어중간한데다 가격 또한 적지 않아서 코로나 때문에 호주머니가 가벼운 관람객들이 결국 구매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충분히 구매가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그 역시 화로에 작품을 직접 불태웠다. “결코 가벼운 마음은 아니었지만 이번 퍼포먼스를 통해 더 좋은 작품을 만드는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작가들의 뼈 아픈 부분, 어려운 점을 알릴 수 있어 좋았다”고도 했다.

이우석 대구현대미술가협회장은 “우리 작가들이 너무 어려워 이런 상황을 널리 알리고자 ‘안팔불태’의 각오로 전시회를 열었는데 많은 분들이 작품을 구매해 주셔서 너무나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특히 “관람객들과 작가들이 작품을 구매해서 어려운 작가들을 돕겠다고 나선 것이 전시회 취지에 너무나 들어맞았다”고 말했다.

김향금 수창청춘맨숀 관장도 “예술가 뿐만 아니라 모두가 어려운 상황인데도 안 팔리면 불태운다는 창작에 대한 의지와 절박함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격려를 해주셨다”며 “그 응원 덕분에 작품이 판매될 수 있었던 성과도 크지만 코로나로 예술활동 자체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작가들에게 활동을 다시 다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전시회가 끝나고 작품에게 작별을 고했던 작가들과 동료들은 뒷풀이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 상황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그들은 “지금 어렵지만 이 또한 지나간다”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내 작품은 운좋게 팔렸지만 작품에 우열이 있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닙니다. 모두 이 어려운 코로나 시대를 이겨냅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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