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40] 당신에게 예술이란

입력 2020.07.03 03:14

최근 별세한 미술가 크리스토 "예술이란 자신을 위한 것… 타인 위해 한다면 선전"

곽아람 문화부 차장
곽아람 문화부 차장
대지미술가 크리스토(84)가 5월 마지막 날 뉴욕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아티스트 친구들의 소셜미디어에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

미술사를 공부하던 대학 시절, 크리스토는 서양 근현대 미술사 수업 기말고사 직전에 등장했다. 대지미술(land art)에 대해 배울 때였다. 대지미술가들은 자연이나 구조물을 캔버스 삼아 작업한다. 잠시 존재했다 곧 사라질 작품을 만든다.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에 모래성을 쌓는 식이다. 크리스토는 말했다. "예술 작품이 영속한다는 건 신화에 불과하다. 우리 작품은 잠깐 지속되지만 모든 이의 뇌리에 남는다."

"이 사람은, 다 싸요." 20년 전 강의실서 들은 선생님 설명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말대로 크리스토는 '싼다'. 1985년엔 파리 퐁뇌프 다리 전체를 2주간 벌꿀색 천으로 싸 버렸다. 천에 감싸이자 기능보다 조형미가 도드라졌다. 1995년엔 베를린의 옛 독일제국 의사당을 은색 천으로 포장했다. 독일 통합을 상징했다. 불가리아 출신인 크리스토는 1956년 의약용품 화물차에 숨어 공산화된 불가리아를 탈출, 빈으로 갔다. 1964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가장 유명한 작업은 2005년 2월 12일부터 27일까지 뉴욕 센트럴파크 산책로 36.8㎞에 오렌지색 천이 커튼처럼 나부끼는 4.87m 높이 철제 구조물 7503개를 설치한 '더 게이츠(The Gates)'다. 1979년 처음 구상해 이후 뉴욕시에 제안했지만 환경보호 등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크리스토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거절당하는 과정까지 작업의 일부로 여겼다. 수많은 사람이 연계돼 있으니 공공미술로서 더 의미 있다 생각했다. 크리스토 팬인 마이클 블룸버그 당시 뉴욕 시장이 적극적으로 나선 덕에 구상 26년 만에 실현됐다. 16일간 400만명을 불러모았다. 겨울인데도 해외에서만 30만명이 다녀갔다. 경제적 효과는 2억5100만달러로 추산된다.

크리스토 부부가 2005년 뉴욕 센트럴파크에 설치한 '더 게이츠'.
크리스토 부부가 2005년 뉴욕 센트럴파크에 설치한 '더 게이츠'. /ⓒCHRISTO AND JEANNE-CLAUDE 2005
런던의 한 아티스트가 전 세계 여러 매체의 부고 기사를 공유하는 걸 보다가 낡은 취재 수첩을 뒤졌다. 2013년 12월 6일 뉴욕 첼시 스튜디오에서 크리스토를 인터뷰했다. 작업실 철문 손잡이가 비에 젖어 싸늘했다. 샴쌍둥이처럼 함께하던 아내 잔 클로드가 2009년 세상을 떠난 영향일까. 크리스토는 바람 빠진 자전거처럼 기운이 없었다. 인터뷰 내내 "아내가 있으면 더 잘 이야기할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동갑내기에 생일도 같은 부부는 1958년 파리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라는 이름으로 반백년간 공동 작업을 선보였다.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며 모든 협찬을 거부했다. 아이디어가 담긴 드로잉과 작품 사진 등을 팔아 작업 비용을 벌었다.

오랫동안 내게 크리스토는 마치지 못한 숙제, 목에 걸린 가시였다. 뉴욕 출장서 돌아온 직후 인사 발령이 나는 바람에 인터뷰를 기사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곱은 손으로 흘려 쓴 글씨는 잉크가 번져 식별하기 힘들지만 "당신에게 예술이란?"이라고 물었을 때의 답만은 또렷이 알아볼 수 있다. "모두 우리 자신을 위한 거다. 매우 흥미진진하고, 아름답고, 유니크한 것. 다른 누군가를 위해 한다면 선전(propaganda)이겠지. 그 짓 안 하려고 불가리아에서 도망 나왔다."

크리스토는 가고 없지만, 그의 예술은 살아 있다. 파리 개선문을 은빛 도는 푸른 천과 붉은 밧줄로 감싸는 작업이 내년 9월 예정대로 진행된다. "왜 천을 쓰냐" 묻자 그는 말했다.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꼭 숨 쉬는 거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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