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조영남은 미워도…

입력 2020.07.02 03:12

정상혁 문화부 기자
정상혁 문화부 기자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하는 건 합리화를 위한 손쉬운 화법이다. 일찍이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 중에서도 고등 사기"라 말했고, 더 일찍이 미국 철학자 스탠리 카벨은 "모던 아트의 상황을 특징짓는 건 산재한 사기(fraudulence)의 가능성"이라고까지 언급한 바 있기 때문이다. 현대 예술은 개념의 식민지가 된 지 오래이고, 제작 방식이 어떻든 대충 논리만 갖추면 누구나 예술가 행세를 할 수 있다. 모든 게 예술이 될 수 있기에 이 한마디로 비판은 무력해진다. "예술이 별거냐?"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75)씨도 이런 '사기론(論)'에 깊이 감화됐던 모양이다. 며칠 전 출간한 책에도 "무엇보다 현대미술은 사기꾼 놀음이고 예술은 사기라는 그(백남준)의 말을 섬뜩하게 가슴에 새기게 됐다"고 써놨다. '그림 대작(代作) 사건'을 두고 사기 혐의로 기소됐던 조씨는 지난 25일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아냈으나 여론 재판에서는 돌팔매질당하고 있다. 조수를 두고 쓰는 미술계 관행과 원천 아이디어의 중요성에 대한 대중의 이해 부족도 이유겠지만, 연예인 이름값을 등에 업고 작은 그림 하나조차 혼자 감내하지 않았다는 괘씸죄가 더 큰 듯하다. 평소 언행에서 비롯한 비호감 이미지도 한몫했다. 문제는 "(조씨 때문에) 앞으로 미술에 관심 접겠다" 같은 반응에서 보이듯 사람들 배신감이 조씨가 아닌 예술 자체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국민은 분야를 막론하고 너무 많이 속아왔다. 수입 소고기가 한우로, 일개 고교생이 의학논문 제1저자로 둔갑하는 장면을 줄기차게 목격했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예술마저 그래선 안 된다'는 저항으로 이어진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이런 태도는 미학자 진중권씨 설명대로 "현대 미술 탄생 100년이 지났음에도 예술에 대한 이해 수준이 아직 19세기에 머물러 있는" 구태(舊態)로 여겨질 수 있겠으나, 아직 사람들이 예술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예술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와는 별개로 예술을 향한 낭만은 지켜져야 한다. "개나 소나 예술한다"는 불신과 폄훼 속에서도 여전히 돈 안 되는 작업에 평생을 바치는 동시대 작가들이 있다. 사람 똥을 통에 담아 팔거나 바나나를 벽에 붙여놓고 수억원 가격을 매기는 식으로 어떤 예술은 경악을 양분 삼아 성장해 나가지만, 기행(奇行)과 잔꾀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감동의 지점이 존재한다. 미국 MIT에서 예술철학을 가르쳤던 평론가 홍가이는 책 '현대 예술은 사기다'에서 서구 현대미술을 "내용 없는 위장과 포장의 사기극"으로 간주하면서도, 자칫 빠지기 쉬운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동심(童心)의 예술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언어 없이도 세계를 이해할 줄 알던 어린 눈으로 돌아가 예술의 원초적인 영혼성을 회복하자는 것. 그런 예술은 분명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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