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바람이 쇼소하네"… 한글은 여성의 문자였다

조선일보
입력 2020.07.01 05:00

[조선일보 100년 기획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37] '완월회맹연' 연구 조혜란 교수

'집안일도 내버려두고, 여자들이 할 일도 게을리하며, 심지어는 돈을 주고 그것을 빌려 기꺼이 빠질 뿐만 아니라 재산을 기울이는 자도 있다.'

조혜란 교수
조혜란 교수는 "며느리가 시집와서 궁체로 'ㅇ'을 쓰는 것을 보고 '우리 집에 대제학이 왔구나!'라며 감탄하는 한시가 있다"며 "여성은 한글을 쓸 줄 알기만 해도 교양을 갖춘 것이었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조선 후기, 소설을 읽는 여성들을 본 실학자 이덕무의 한탄이다. 고전문학 연구자인 조혜란(60)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당시 사대부의 글을 보면 여자들이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베도 짜야 하는데, 소설만 읽고 앉았으니 해괴한 풍속이라며 걱정하는 말들이 많다"며 웃었다. "뒤집어보면 여성들이 그만큼 소설을 많이 읽었다는 뜻이죠. 세책가에서 소설을 빌려 보기 위해 비녀나 팔찌를 저당잡히기도 하고, 정갈하게 쓴 필사본을 시집갈 때 혼수로 가져갈 정도였으니까요."

조 교수는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조선 최장(最長) 대하소설 '완월회맹연'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고 있다. 무려 180권짜리 방대한 한글 소설의 작가는 양반 여성으로 추정된다. 조선 순조 때 조재삼이 쓴 '송남잡지'에는 "완월은 안겸제의 어머니가 지은 바로, 궁궐에 흘려 들여보내 이름과 명예를 넓히고자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실제로 '완월회맹연'은 1967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한글 필사본으로 발견되며 학계에 알려졌다. 조 교수는 "17세기 중반부터 긴 소설을 읽을 만한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있는 독자층이 생겨났고, 또 한글로 장편 서사를 쓸 만한 작가의 역량도 구축됐다"고 했다.

완월회맹연은 일상의 비속어부터 상층의 격식어까지 다채로운 어휘들을 썼다. 늙은 소나무가 '울울'하다, 아지랑이가 '양양'하다, 슬픈 바람이 '쇼소'하다, 폭포가 '웅웅'하다 등 자연과 날씨 묘사도 섬세하다. 조 교수는 "읽어보면 교양이 넘치고 한글 문장을 굉장히 우아하게 구사한다"면서 "자식들이 집안 어른을 위해 춤을 추는 장면도 있는데, 어찌나 춤이 화려하고 복잡한지 '이렇게 출 수 있다면 방탄소년단 아닌가' 연구자들끼리 감탄한 적도 있다"고 했다. "재밌는 표현도 많아요. 보잘것없다는 뜻으로 접두사 '좀'을 붙여서 '좀얼굴' '좀무리'라고 쓰고요. 풍성하다는 뜻의 '흐억지다'는 표현도 나오는데 지금 사전에 남아 있는 단어 '흐벅지다'의 옛 형태가 아닐까 싶어요."

한글은 창제부터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문자였다. 오래도록 비공식적 표기 문자였으며 원래 이름은 '훈민정음'이었으나, 나중에는 주로 부녀자들이 사용한다고 해서 '암글'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는 "한문 교육에서 밀려난 여성들이 오히려 우리글을 풍부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한글 창제 후 50년쯤 지나면 이미 대궐에선 궁중 비빈뿐 아니라 일하는 궁녀들까지 한글로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유산이나 묘지 관련 소송을 할 때도 여성은 한글로 상소를 올렸어요."

한문을 배우고 익힌 여성도 한글을 써야 유리할 때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인수대비였다. 한문에 능숙하면서도 신하들과 의견 충돌이 있을 땐 한글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 조 교수는 "집안에서 한문을 배우더라도 집 밖의 공식적인 일에 여성이 한문을 쓰는 건 부덕(婦德)에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면서 "인수대비도 유학자들을 상대하기엔 한글을 사용하는 게 낫다고 전략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상소나 편지를 한글로 쓰며 편리함도 얻을 수 있었지만, 한중록·규한록에서 볼 수 있듯 감정의 토로 측면에서도 필요했어요. 성차별이 전제돼 있었던 사회에서 여성에게 한글은 너무나 절실한 자기표현의 수단이었죠."


[조혜란이 뽑은 조선 여인들의 名文]

▲의유당 의령 남씨 '의유당관북유람일기' 중

"관아 문에 이르러 관내 마루 아래 가마를 놓고 환했던 초롱들이 마치 뭇별들이 햇빛을 맞아 떨어지듯 사라졌으니 심신이 황홀하여 몸이 절로 대청에 올라 머리를 만져 보니 구름머리 꾸민 것이 고여 있고 허리를 만지니 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갑자기 이 몸이 여자임을 깨달으며 방안으로 들어오자 바느질하고 베 짜던 것이 주위에 놓여 있으니 손뼉을 치며 웃었다."

▲풍양 조씨의 '자기록' 중

"긴긴 이 세상을 어찌할까나? 나의 남은 생을 생각하니 검푸른 머리와 발그스레한 얼굴이 쇠할 날이 멀어 남은 세월이 일천 터럭을 묶어 놓은 듯하니 어찌 견뎌 살 거나? 그러나 일은 이미 일어난 것이어서 하릴없구나. 잠시 깃들다 가는 세상에서 인간의 명은 백 세가 안 되는데 내 세상은 또 얼마나 될까?"

▲이씨부인의 '규한록' 중

"열해를 넘어 주인 없는 몸이 의리상 가사에 마음을 두는 것도 하늘 같은 덕택입니다. 며느리인 제가 성정이 고약하여 임자 없는 시댁이라 가벼이 여겨 과연 이리 사정을 밝혀 아뢰는 바가 아니오니 어머님께서도 화내어 불에 넣지 마시고 두 번이나 읽어 주십시오."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

"기사년(1809) 가을 내가 동호 행정에서 살 때, 집 안에서 밥 짓고 반찬 만드는 틈틈이 사랑방에 나가 옛글을 읽었다. 읽으면서 보니, 옛글들은 일상생활에 매우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산야에 묻힌 모든 글을 구해서 보고 또 손길 닿는 대로 펼쳐 보며 견문을 넓히고 심심풀이로 삼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총명이 무딘 글만 못하다'는 옛사람의 말이 생각났다. 적어 두지 않는다면 어찌 잊어버렸을 때 도움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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