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정은 '보류'도 사전 각본, 제재 흔드는 작전에 흔들리면 안 돼

조선일보
입력 2020.06.25 03:24

김정은이 23일 노동당 중앙군사위 예비 회의에서 김여정이 지시한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했다고 한다. 군사위 예비 회의는 김정은 집권 후 처음이다. 북한은 24일 전방에 설치했던 대남 확성기를 철거했고 문재인 정부 비난 기사도 삭제했다. 4일 여동생 김여정의 말 폭탄을 시작으로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북한군 도발 예고로 고조되던 대남 협박이 김정은 한마디에 숨 고르기 하는 양상이다. 전부 사전 각본에 따른 것이다.

북은 계획적으로 위기감을 끌어올리다 돌연 중단하며 마치 양보하는 듯한 전술을 써왔다. 30년 전 1차 북핵 위기 때는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 핵 연료봉 추출을 해놓고 평양에 간 카터 전 대통령에게는 '핵 개발 의사가 없다'며 미·북 협상을 이끌어냈다. 10여 년 전에는 미국 여기자 2명을 납치한 뒤 '인도주의'에 따라 풀어준다고 했다. 그래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했다. 2017년에도 6차 핵실험과 ICBM·SLBM 도발까지 하고는 2018년 평창 올림픽에 참석해 평화 쇼를 벌였다. 그때마다 식량·에너지 등을 얻어내거나 한국을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지난 3월 김여정이 청와대를 겨냥해 "저능한 사고" "완벽한 바보"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코로나 위로 친서를 보냈다. 여동생은 때리고 오빠는 어르는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김여정은 문 대통령을 비난하며 군사 도발을 예고했다. 그러자 김정은이 나서서 '보류'를 지시했다. 김여정이 문 대통령과 싸우면 자기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김씨 남매 속셈은 뻔하다. 내부 경제 위기에 따른 주민 불만을 대남 적개심 고취로 무마하고, 한국 정부에 미국을 압박해 대북 제재를 풀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당은 김정은 '보류' 결정에 "우리 스스로 시행할 수 있는 (대북) 사업을 적극 찾아야 한다"고 했다. 한 번은 속을 수 있다. 그러나 속는 것이 거듭되면 고의다. 북핵이 폐기될 때까지 대북 제재는 한 치도 흔들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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