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혜 스포츠부 기자

요즘 한화 이글스는 날개 펴는 법을 잊었다. 지난 5월 22일 NC를 5대3으로 꺾고 나서 6월 11일 롯데전까지 내리 지면서 창단 35년 팀 역사상 최다인 17연패에 도달했다. 성적은 당연히 압도적 꼴찌. 10구단 중에서 승리가 나 홀로 한 자릿수다. 어린이날 열린 2020 시즌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작년 정규리그 2위 팀 SK를 3대0으로 누르고 2009년 이후 11년 만에 개막전 승리를 거뒀던 쾌조의 출발이 신기루 같다. 한용덕 감독이 물러났지만 연패는 이어졌다.

야구 팬들은 한국 프로야구 출범 이후 38년간 바닥을 지탱했던 '삼미 체제'가 끝나고 '한화 체제'가 들어서는 역사적 전환기를 목도하고 있다. KBO 원년 멤버 삼미 슈퍼스타즈는 KBO리그 단일 시즌 최저 승률(0.188· 1982년), KBO리그 단일 시즌 최다 연패(18연패·1985년) 등 온갖 꼴찌 기록을 독식하고 창단 4년 만에 사라져버린 최약체 팀이다. 35년 전 삼미는 마운드에 소금도 뿌려보고 종교인을 구단으로 부르는 등 온갖 술수를 동원한 끝에 4월 30일 MBC청룡을 4대0 완봉으로 제압하고 18연패에서 탈출했다. 바로 이튿날 청보식품에 야구단이 팔렸다.

지금껏 야구 역사상 최다 연패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신인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AA)에서 1889년 루이빌 콜로넬스가 세운 26연패다. 1889년. 그해 오스트리아에선 아돌프 히틀러가 태어났고 고종 재위 26년 된 조선에선 일본에 곡물 수출을 금지하는 방곡령(防穀令)이 선포됐다. 20세기 메이저리그 체제에선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1961년 23연패에 빠졌다. 일본 프로야구는 1998년 지바 롯데의 18연패(1무승부 포함)가 최다 기록이다. 한국 야구 팬들은 한화가 올해 루이빌 콜로넬스가 보유한 세계기록을 131년 만에 갈아치우는 광경을 보게 되진 않을지 염려한다.

한화 선수들이 6일 대전 홈 경기에서 NC에 대패한 후 고개 숙이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모습.

조 매든(66) 감독은 2016년 시카고 컵스에서 '염소의 저주'를 106년 만에 깨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해냈다. 그는 프로야구 선수를 5단계로 나눈다. 1단계는 '메이저리그 입성 자체로 환호', 2단계는 '다시는 마이너리그로 안 내려가겠다고 발버둥', 3단계는 '주전 입지를 굳혔다는 자신감 획득', 4단계는 '야구로 돈을 왕창 벌겠다는 야망', 5단계는 '이기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한 상태'이다. 매든 감독은 4~5단계에 진입해야 팬들의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기량을 발휘하는 스타 플레이어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모든 프로 선수가 이 단계까지 성장하는 것이 아니며 1~2단계에서 끝나고 마는 경우도 숱하다. 슬럼프에 좌절했거나 애초에 꿈이 소박했다 등의 사정이 있겠지만 팬들이 기억할 이름은 못 된다.

한화는 10개의 실책보다 1개의 안타에 의미 두는 '행복 야구'를 한다. 이 팀엔 1군 선수가 된 것만으로 만족하는 1단계 선수가 많아 보인다. 득점 찬스마다 병살타가 나오고 수비는 '알까기'를 일삼아도 화내는 이가 드물다. 다혈질 팬이었다면 "느그가 프로가" 한바탕 뒤엎을 만도 한데 한화 팬들의 인내는 조용하고 깊다. 한화는 연패를 변명하려고 코로나 바이러스 핑계를 대거나 긴급재난 점수를 요구하지 않고 좌파니 우파니 이념 탓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야구를 잘 못해서 죄송하다고 고개 숙일 뿐이다.

2020년 한국 사회는 잘못을 저질러도 책임 인정은커녕 남 탓 뒤집어씌우기에 혈안이 됐다. 스포츠만 이념 전쟁에서 해방된 비무장지대로 남았다. 잔인하고 뻔뻔한 세상에 질식할 것 같은 날엔 한화의 야구를 보자. 결코 비굴한 군말은 없는 스포츠 정신이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