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목조 건축은 100년 지나도 문화재"라 했던 한옥 匠人

조선일보
입력 2020.05.29 03:01

신영훈 前 한옥문화원장 별세

'한옥의 장인(匠人)' '우리 시대의 목수'로 불렸던 건축사가이자 대목수 신영훈(85·사진) 전 한옥문화원장이 28일 별세했다. 아호는 목수(木壽).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이란 뜻이다.

1935년 개성에서 태어나 중앙고 3학년 시절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의 강의를 듣게 되면서 문화재의 길로 들어섰다. 1959년 고건축 전문가 임천 선생을 만나 수원성 동장대 보수 공사에 참여한 뒤로는 고건축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석굴암, 화엄사 각황전, 쌍봉사 대웅전, 송광사 대웅보전, 진주성 등 각종 중수·보수공사에서 감독관을 지냈다.

신영훈 前 한옥문화원장
/조선일보 DB
특히 1960년대 초 숭례문 중수(重修)공사 때도 공사감독관으로 참여해 당대의 대목수들과 함께 숭례문을 해체했다 다시 짓기도 했다.

2008년 숭례문 화재 당시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 "독일 방문 후 귀국길에 인천공항 서점 가판대에서 신문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며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렸다"고 탄식했다.

평소 "주변의 산수(山水)를 고려하는 안목, 살아 숨 쉬는 공간에 대한 철학, 가정의 안온함을 빚어내는 기술이 한 덩어리가 돼야 잘된 한옥이 탄생할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100년이 지나면 시멘트 건물은 헐어야 하지만 목조 한국건축은 문화재가 된다"는 말도 남겼다.

덴마크 국립박물관 한국실에 사랑방 등 한국 전통 건축시설을 건립했으며, 사진작가 김대벽씨와 함께 작업한 '역사 기행 시리즈'를 10권까지 냈다. '한국의 살림집' '우리 한옥' '한옥의 향기' '한국의 고궁' 등 저서가 있다. 1962년부터 1999년까지 문화재 전문위원을 지냈다. 2000년 한옥문화원을 설립해 후학 전문가들을 양성해 왔다.

유족으로는 아내 이숙범씨와 아들 신대용(Vcts 말레이시아 대표)·신호용(SM에너지 이사), 딸 신지용(한옥과문화 대표), 며느리 이현주(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30일 오전 7시. (02)2072-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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